올해는 대구문화재단 이사로 대표를 뽑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값진 경험을 했다. 현재 대구문화재단 대표 선임은 7인으로 구성된 대표후보추천위원회에서 응모자 중 3배수를 추천하고, 이들 중 이사회가 2배수를 올리고, '대구시장이 적임자를 최종 결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러한 선임 절차는 초반에는 공정한 심사 기준이 있지만, 최종 결정에서 명확한 심사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채 단 한 사람의 낙점으로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결정적 순간의 불투명성'은 다양한 의심과 근거 없는 추측을 양산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대구문화재단에서 실시하는 아주 적은 금액의 지원 사업도 공정성과 절차상의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전에 명확한 심사 기준을 명시하고, 결과를 발표할 때는 어떤 기준에 따라 최종 선택을 했는지 심사평을 공시하게 되어있다. 공정성 시비가 될 여지를 만들지 않는 합리적인 절차는 부정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그래야 재단과 예술인 사이에 신뢰가 형성된다. 만약 둘 사이에 신뢰가 깨진다면, 재단은 존립 근거가 흔들린다. 그런데 현재 대구문화재단 대표 선임 절차의 불투명성은 무수한 소문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홍등 효과'를 동반한다.
장이모우 감독의 '홍등'은 192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다. 송련(공리)은 대학을 다니다가 계모가 더 학비를 댈 형편이 못 되자 권세가인 진대감의 넷째 첩으로 들어간다. 진대감은 네 명의 부인 중 한 명을 택해 잠자리를 같이하는데, 선택당한 부인의 처소에는 홍등을 밝히는 가풍이 있다. 홍등이 자주 밝혀지는 부인일수록 집안에서 권력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진대감의 선택을 받지 못해 홍등이 켜지지 않으면 하인들조차 무시하는 신세가 될 거라는 두려움에, 부인들이 서로 시기하고 상호 비방과 음모를 꾸미는 홍등 효과가 나타난다.
송련은 당시로는 드물게 대학을 다니던 봉건사회에 물들지 않은 신여성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부인들과 마찬가지로 홍등에 집착하게 된다. 독립적이고 당찬 송련도 둘러싼 환경이나 제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결국 홍등 효과로 첩들과의 경쟁에 완전히 매몰된다. '홍등'은 불합리한 제도가 사람을 어떻게 길들여 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민주적인 제도는 다수인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시민들이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수에 의해 선출된 대표가 다수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이 제도가 실행되는 절차는 투명하고 공정해서 다수의 문화예술인들의 상생과 화합에 도움이 되어야지, 불신과 반목을 조장하는 온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대구가 문화기관장 선출에 시장이 개입하지 않는 '인사 독립성'을 보장하는 민주성과 정당성을 확보한다면, 대구는 '진정한' 문화예술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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