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과학문명, 코로나19, 종교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글쓰기를 200자 원고지에 하다가 타자기에 이어서 1988년 처음으로 컴퓨터로 하게 되었을 때에는 기술 문명의 발달에 놀라워하면서 그 편리함을 매우 좋아했다. 세월이 제법 흘러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모르는 일이 발생할 때에는 1992년생인 조교에게 물어야 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편하기는 했지만 견딜 만했다. 그 이후 불과 몇 년도 흐르지 않은 오늘날에는 이렇게 발전하는 과학 문명이 상당히 당혹스럽고 적응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제까지 가르치는 위치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는데, 요즘은 안내하는 위치로 바뀌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적응을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메일과 카톡을 통해 전해 오는 좋은 말들과 좋은 강의들, 그리고 각종 정보들은 내가 여기서 할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예 현대사회에서 밀려날 판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중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나에겐 스승과 같은 위치의 연세가 높은 수도자로부터 받은 것이다.

〈코로나19가 알려준 사실〉

1. 유럽은 생각했던 것만큼 선진국이 아니었다.

2. 부자라고 가난한 사람보다 면역력이 좋은 건 아니었다.

3. 종교는 단 한 명의 환자도 살리지 못한다.

4. 축구 스타보다 의료인들이 훨씬 값어치 있다.

5. 소비가 없는 사회에 석유는 쓸모없다.

6. 우리가 격리되어 보니 동물원의 동물들 심정을 알겠다.

7. 인간들이 활동을 덜 하면 지구는 회복된다.

8.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도 일을 잘 해낸다.

9. 외식·회식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10. 일본은 후진국이다!!

이들 중 특히 3번은 나에게 민감한 사항이지만 사실이 그러하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소개하고 싶은 것은 있다.

대구 신천지 신도들 사이에서 코로나19가 급격히 번져 나가는 일이 발생했을 때, 천주교대구대교구는 머뭇거리거나 막연한 기적에 기대하지 않고 교구 내 모든 성당에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를 금지시키는 그야말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 조치는 대구대교구 내 수십만 신자들을 코로나19의 확산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되었다. 2천 년 교회 역사 안에서 교구 전체의 공적 미사를 자발적으로 금지시킨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한국 천주교 모든 교구들이 이내 동참했고, 이어서 바티칸을 비롯하여 세계 교회 곳곳에서 같은 조치를 내렸으며, 개신교와 불교에 이어 이슬람교조차 동참하였다. 그렇게 하여 많은 사람들을 코로나19의 확산으로부터 지켜내었다.

가톨릭교회가 의료인이 되어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를 직접적으로 치료하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저 기적을 바라는 주술적인 기도에 의지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빠른 속도로 취하여 코로나19 극복에 함께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코로나19를 퇴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의료인들 중에는 가톨릭 신자도 많이 있고, 교회는 모든 의료인에게 감사와 격려로 힘을 보태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종교 생활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좀 더 깨어나게 하고 있다. 신앙 생활은 이성적인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그 너머 있는 세계에 대해 눈을 뜨는 일이다. 과학 문명과 대립하면서 주술적이고 비이성적인 어떤 것을 앞세우는 종교 단체는 시간 속에서 그러한 존재라는 것이 밝혀지고 외면당하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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