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한민국 보수의 길] 3. '지리멸렬' 민주당의 재기…무엇으로 가능했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 세 번째)가 지난 4월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21대 총선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 세 번째)가 지난 4월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21대 총선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지난 4월 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 마련된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21대 총선 개표상황실에서 사퇴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지난 4월 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 마련된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21대 총선 개표상황실에서 사퇴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에서 과반이 훌쩍 넘는 180석을 차지, 최근 5년간 전국단위 선거 4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2008년 정권을 내주며 스스로 '폐족'(廢族)을 선언한 후 12년 만에 대통령 권력, 지방 권력, 의회 권력을 싹쓸이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것이다. 민주당의 재기는 도대체 무엇으로 가능했을까.

정치 전문가들은 미래통합당의 자멸로 인한 반사이익에 주목하면서도 재집권을 향한 민주당의 자체 노력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고 분석한다. 무엇보다 정치 수준이 높아진 유권자들이 '능동적인 투표'에 나선 결과로서 민주당의 재기와 통합당의 몰락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치 선점·원리원칙·우클릭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잇따라 패한 민주당은 먼저 공정·정의·안전·통합·평화 등 2010년대 들어 새롭게 부상한 핵심가치를 선점하기 위해 분투했다.

실제 박근혜 정부 시절 발생한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경제민주화 논란 등에서 민주당은 일관된 기조로 정부여당을 비판했다.

효과는 당장 발생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치러진 6·4 지방선거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이어진 7·30 재보선에서 15개 선거구 중 4곳에서만 승리하는 참패를 다시 겪었다. 이듬해인 2015년 열린 4·29 재보선에서도 민주당은 4개 선거구에서 전패를 기록했다.

이후 분당과 합당이 반복됐지만, 대여투쟁의 원칙은 흔들림이 없었다.

민주당 중앙당 관계자는 "야당으로서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하나의 확실한 입장을 정하고 이를 꾸준히 밀어붙였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거듭 강조된 것이 '원리원칙'"이라고 했다.

2016년 당시 문재인 대표도 "정치는 타협이다. 우리 인생사가 타협이다. 어떻게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만 살 수 있나. 그러나 원칙만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며 '원칙 있는 정당'을 강조한 바 있다.

동시에 민주당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 사상 최초로 온라인·모바일 입당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정치혁신의 끈을 놓지 않았다.

중도층 포용에도 적극 나섰다. 강령을 수정하며 1987년 7월 노동자 대투쟁과 2008년 촛불집회에 대한 내용을 삭제하는 한편, 경제 성장과 관련한 내용을 늘려갔다.

새정치연합과 합당하면서는 정강정책 전문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강조하는 등의 뚜렷한 우클릭 행보를 보이며 좌파에서 중도우파 중산층을 아우르는 '빅 텐트' 정당을 꾀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2016년 20대 총선-2017년 19대 대선-2018년 제7회 지방선거-2020년 21대 총선까지 내리 4연승을 거두게 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민주당이 보인 노력과는 별개로, 변화한 민주당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에게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채장수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의 자체적인 노력을 인정해야 하지만 민주당에게 투표한 유권자의 능동적인 선택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며 "반공주의, 지역주의 등 네거티브 가치에 함몰된 통합당보다 민주당이 제시한 가치에 유권자들이 반응하고 움직인 것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변화한 유권자 구조

민주당은 변화한 유권자 구조에 기민하게 대처했다.

보수층은 2012년 대선에서 총결집했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51.3%를 몰아주자 민주당에선 '한국 사회는 보수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불만이 빗발쳤다. 진보는 이미 과반을 형성한 보수를 도저히 넘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2016년 20대 총선부터 보수 연합은 와해하기 시작한다.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은 33.5%로 급전직하했고, 이듬해 열린 대선에선 보수 후보 2명(홍준표·유승민)의 합산 득표율이 30.8%에 그쳤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광역의원 비례대표 득표가 34.8%(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로 보수 연합이 '일시적으로' 균열됐다고 분석했지만, 올해 총선에서도 통합당(미래한국당)은 33.8%의 비례대표 득표율에 머물렀다. 4년 전 30%대로 추락한 득표율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이에 따라 40~50%대 육박하던 한국 보수가 이제는 30%대로 주저앉았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박형준 통합당 선거대책위원장도 총선 직후 "기본 정치 지형의 변화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관계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권자의 생각이 바뀌었다. 즉 유권자 자체가 바뀐 것"이라며 "보수에서 이탈한 층이 있는데 이를 민주당은 흡수하려 노력했고 통합당은 재흡수를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민주당의 전국단위 선거 4연승이 가능했던 건 수도권과 충청, 강원 등에서 대거 발생한 보수 이탈층을 끌어안은 것은 물론 영남에서도 지지 기반을 확대한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향후 보수와 진보가 팽팽히 맞붙어도 보수는 보수표만으로 더 이상 승리가 불가능하며 운동장이 마침내 평평해졌다는 예상까지 나온다.

◆보수 분열 반사이익

통합당의 자멸이 민주당의 재기에 결정적 요인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거란 반드시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상대가 스스로 주저앉아버리면 승리는 저절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새 가치 선점에 분투할 때 통합당은 유권자들에게 자기만의 지향점을 뚜렷이 제시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혁신, 미래, 새로움, 통합을 얘기한 반면 통합당은 기득권, 과거, 낡음, 분열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정치권에선 2016년 20대 총선 '공천 파동'을 보수 몰락의 기점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시 진박(眞朴) 갈등으로 보수는 선거도 지고 지지층도 잃는 치명타를 입었다. 하지만 이후 제대로 봉합하지 못했고, 오히려 극단주의와 손을 잡는 최악의 수를 뒀다"고 말했다.

황교안 체제에서 통합당은 소수파로 전락한 이유를 분석하지 않은 채 대신 태극기 부대, 극우 유튜버, 아스팔트 개신교와 손을 잡고 끝내 4연패의 늪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보수가 분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보수 안에서 법치주의 보수, 시장주의 보수, 애국주의 보수 등 여러 층위가 나뉘었고, 특히 통합당에 실망한 법치주의 보수층이 등을 돌려 그 일부가 민주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채장수 교수는 "보수 유권자들 가운데서 통합당이 자신의 보수 지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분화된 보수는 현재화, 정상화의 과정을 '순탄치 않게' 걷고 있는 것"이라며 "다만 민주당의 반사이익도 그 효과가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도덕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시사저널 제공.
시사저널 제공.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