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얼마 만에 불러 보는지 모르겠네요.
아버지는 제가 6남매의 맏딸이라 자랄 때 엄청 귀여워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지요. 그런 아버지가 결혼시킬 때는 어쩌다 선도 한 번 안 본 모르는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셨죠. 저는 그게 지금도 이해가 안 되고 살면서 힘들 때마다 아버지한테 서운했어요.
그런데다 우리 집에 아버지가 오셨을 때 하필 남편과 다투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와중에 좋지 못한 모습까지 보여드리게 되어 아버지가 마음 아파하시면서 그 길로 집에 돌아가신 후 3년 간은 왕래도 없이 제 걱정에 맘 편히 못지내셨지요.
돌아가실 때까지도 제가 맘에 걸려 아버지가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하시는건 아닐까 하고 걱정을 할 정도였어요. 아버지가 얼마나 속상하셨을 지 생각하니 너무 죄송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돌아가시고 나니 잘 못해 드린 것만 생각나고 나 같은 불효자가 또 있을까 싶어요.
학창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아직 눈에 선하네요. 중학교 때 제가 친구들이랑 같은 반 남학생들 도시락을 몰래 까먹어서 아버지가 학교에 불려오고 교무실에서 선생님들께 싹싹 빌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지요. 징계를 받아서 그 일로 저는 소풍도 못 가고 아버지가 화가 나서 책도 다 찢어 버리기까지 했는데... 그때는 심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나네요. 제 생각에는 자랄 때 얌전했던 거 같은데 이런 일들을 떠올려 보면 제가 개구쟁이였나 봅니다.
중학교 졸업할 때는 아버지가 제 밑으로 동생들이 많아 다 가르치려면 힘들다면서,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못 보내서 미안하다며 빨간 저고리랑 벨벳 치마 해주셨잖아요. 사실 그때 저는 아버지 마음과 다르게 고등학교 가는 것보다 새 옷 얻어 입는 게 더 신나고 좋아서 너무 행복했지요. 그렇게 철없던 딸이 어느새 83살이나 되었어요.
많은 사랑 주시며 예쁘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원을 빌어 이뤄질 수 있다면 아버지 밑에서 어리광부리며 자랄 때처럼 몇 달 만이라도 그렇게 한번 다시 살아보는 거예요. 아버지 좋아하시는 고등어도 같이 구워 먹고 하고 싶네요. 이제는 나한테 함부로 하던 남편도 없고 맘 편히 잘 지내고 있으니 아버지도 제 걱정 마시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계세요.
아버지(배순도)의 딸(배팔임) 올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