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원순 같은 사람은 당장 100조원이 있어도 복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 시장의 죽음이 남성들의 젠더 감수성 제고와 권력에 의한 성폭력을 근절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만, 이 사람이 죽음으로써 우리 국가와 사회가 입은 피해, 사회적 약자들이 앞으로 입을 피해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진보적 사회학자'라 불리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말이다. 이 발언은 매우 징후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지자체장들의 성추행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배려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4년여에 걸친 그 고통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회에 가져다줬다는 그 막대한 이익 앞에서 '무시해도 좋을 양'으로 취급될 뿐이다.
반면 박 시장의 업적은 턱없이 과장된다. 그는 박 시장이 이 사회에 가져다준 이익을 100조원 이상으로 추산한다. 어디서 나온 산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사회로서는 그 대신에 100조원을 취하는 게 이익이다. 100조원이라면 생존의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굳이 성추행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않고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운동권 인사들의 지독한 시혜의식이 엿보인다. 그는 박 시장이 죽음으로써 국가와 사회, 사회적 약자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우리 국가와 사회가 입은 피해, 사회적 약자들이 앞으로 입을 피해'가 뭔지 모르겠다. 그가 영생불사가 아닌 이상 그 피해(?)는 언젠가 발생하는 거 아닌가?
운동권의 이 지독한 나르시시즘이 민주당 사람들의 잇따른 성추행 사건의 배후를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자기들은 국가와 사회,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싸우는 투사이니, 그 대의의 거룩함 앞에서 여성들의 희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아니, 그게 곧 국가와 사회,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일이니 외려 영광으로 알라는 것이다.
김동춘 교수의 발언은 운동권 남성들이 이끄는 조직의 전형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김지은 씨가 증언하듯이 바로 그 분위기가 성추행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감히 그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게 막은 요인이었다. 김동춘 교수가 지금 조장하고 있는 분위기야말로 그동안 조직 내 성폭력을 일으키는 '가해 구조'의 중요한 일부로 기능해 왔다.
이는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강남순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 교수. 그는 평소에 교회가 "페미니즘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 그가 성추행을 했다고 박 시장을 비난하는 것은 "순결주의 테러리즘"이라고 성토한다. 놀랄 일이 아니다. 그 성추행을 저지른 가해자도 평소에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지 않았던가.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도대체 무슨 가치를 옹호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지금 박 시장의 공과를 따질 맥락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할지 말지 논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잖은가. 당장 해야 할 것은 일단 피해자를 2차 가해에서 보호하는 것, 그리고 그에게 고통을 준 그 권력형 성추행을 막는 것이다.
김동춘 교수는 '젠더 감수성 제고'와 '권력에 의한 성폭력을 근절하는 효과'보다는 박원순이 가져다주었다는 100조원의 이익이 더 중하다고 말한다. 발언의 천박성은 별개로 치자. 문제는 이런 논리가 '별것 아닌 일을 폭로함으로써 피해자가 우리 사회에서 100조원 이상의 손실을 입혔다'는 2차 가해의 논리를 구성한다는 데에 있다.
피해자는 그의 장례가 서울시장(葬)으로 치러진 데에 대해 좌절과 절망을 표현했다. 박 시장에 대한 자신의 '사적 추모'의 염에 앞세워야 할 것은 그의 권력에 희생된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공적 공감'이다. 강남순 교수는 마틴 루터 킹도 온갖 못된 짓을 다 했다고 말한다. 그 사실이 대체 고통받은 피해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모든 위인이 그 정도 흠결은 있으니 너도 박원순 시장을 용서하렴'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대의를 위해 희생되어도 좋은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을 파괴하는 것은 곧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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