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20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화엄사 흑매(黑梅)/ 이태숙

이태숙
이태숙

흑매는 없지만 있다 보려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눈물 다발로도 부족한 당신의 마음이 닿는 순간 벙근다 휴월(虧月)의 그믐밤 수천 밤을 포개어 보내며 혈관이 터지도록 꽃물을 끝까지 퍼 올리면 가슴에 묶어둔 회한이 온통 붉음으로 눈을 멀게 한 후 핀다 산통을 겪는 소리, 귓가에 신생의 자지러짐처럼 들린다 나의 온몸이 아프다 꽃샘바람은 오늘부터 자신을 시샘하는 바람이고 그 흔한 꽃말들은 속내를 감추기 위한 소문이다
만개한 꽃잎이 어느새 잠잠해지는 동안 풍경소리가 쉼 없이 산사를 맴돌며 애잔한 번뇌를 삭힌다 오래 참았던 기침처럼 그대에게 왈칵 쏟아내고 싶던 늦은 전언, 말없이 떨어뜨리며 봄날과 함께 내가 지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