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연잎 같은 마음

동진 스님 망월사 주지, 백련차문화원장
동진 스님 망월사 주지, 백련차문화원장

초복을 지난 연밭이 장관이다. 백련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연꽃과 연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화음을 이룬다. 봉오리 위로 붉은 잠자리와 작은 새 개개비가 올라앉아 서정을 돋운다. 연지에 비친 흰 구름은 유유히 흐른다. 바람이 불면 연잎끼리 부딪치며 대숲처럼 일렁인다.

연꽃은 나팔꽃처럼 매일 아침에 피어나고 오후에 지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향기를 품어낸다. 반면에 다른 꽃들은 한 번 피면 핀 상태로 자신을 드러내고 지고 만다.

비가 오면 연꽃보다 연잎이 주인이다. 비를 담은 연잎은 끊임없이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무게를 덜어낸다. 둥근 연잎에 떨어진 비는 연잎을 가득 채우지 않는다. 20% 정도만 차면 자신을 미련 없이 비워낸다. 이런 작용을 위해 연잎은 외줄기이다. 옆 가지도 없다. 길이는 2m 전후로 가늘고 길다. 안에 모공이 있어 바람이 불면 휘어지지만 꺾이지 않는다. 보름달만큼 큰 연잎으로 무엇이든지 거부하지 않고 다 받아들이고 수용하다가 자신이 감내할 무게보다 무거워지면 자신을 낮추고 그 짐을 비운다. 비우는 것뿐만 아니라 잎에 묻은 먼지까지 같이 씻어낸다. 비워낸 연잎은 언제 무엇을 담았는지 모를 만큼 아무런 흔적도 없다.

부와 명예, 권력, 사랑, 분노, 원망, 미움, 그 외 자신이 좋아하는 소유물을 가지고 있다가 자신을 떠나갈 때는 비운 연잎처럼 흔적 없이 맑고 깨끗해야 한다. 그래야 스트레스와 우울증에서 벗어나 자신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 비 오는 날이면 위 연잎의 물방울이 아래 연잎으로 '또르르' 구르고 아래 연잎의 물방울은 연못으로 떨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연의 향연이다.

금강경에서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을 현장 설법하는 것 같다. '어떤 대상을 만나고 소유하더라도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집착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키고 사용하라'는 진리이다.

무소유(無所有) 사상은 서양에서는 멀리 디오게네스로 대표되는 견유학파에까지 소급된다. 동양에서는 장자(莊子)가, 현대사에서는 간디와 톨스토이가 이 사상을 실천하였다. 연잎에서 관찰하고 배웠으리라.

법정 스님은 '연잎의 지혜'라는 글에서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버린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연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세상 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이다"고 했다. 법정 스님은 이어 "사람들은 가질 줄만 알지 비울 줄은 모른다. 삶이 피로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놓아버려야 할 것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연잎처럼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했다.

연잎에는 과학이 숨어 있다. 연잎에 물이 묻지 않는 이유는 마이크로 나노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잎은 깨끗하게 보이지만 10에서 20마이크로 정도 되는 범프(돌기)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위에 다시 직경 100~200나노미터 정도의 나노 털들이 위를 덮고 있어 왁스층을 이룬다. 그래서 물이 연잎 위에 떨어졌을 때 물이 퍼지는 것이 아니라 동그란 공 모양을 유지하면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다가 미끄러진다.

이 과정에서 연잎 표면이 물방울과 함께 먼지까지 실려 내려가 세정된다. 이런 현상을 독일의 식물학자 빌헬름 바르틀로트 교수는 '연잎의 효과'라고 했다.

이런 연꽃의 발수성과 자정작용 원리는 현대 과학으로 증명되었다. 연잎 유리와 연잎 섬유, 연잎 도료, 아웃도어 옷, 생활용품 등을 만든다. 그러면 표면에 무엇이 묻지 않기 때문에 청소를 덜 하게 되고 세제도 물도 아끼게 되어 생활이 편리해진다.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정치사회 지도자들이 연잎의 미학과 철학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러면 비난받지 않고 연꽃처럼 맑고 향기로워지리라.

맑은 날은 연꽃을 감상하고 비 오는 날은 연밭에서 연잎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관찰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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