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창환의 같이&따로] 큰 정부 대 작은 정부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지난 14일 정부는 한국판 뉴딜정책을 발표하였다. 친환경 저탄소를 핵심으로 하는 '그린 뉴딜'과 경제 전반의 디지털 혁신을 강조하는 '디지털 뉴딜'이 한국판 뉴딜정책의 핵심이다. 여기서 한국판 뉴딜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뉴딜'이라는 용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돌아보고자 한다.

사회적 뉴딜이 필요하다는 말도 언론에서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고, 우리 사회에서 어느 순간 '뉴딜'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뉴딜정책은 1929년 미국에서 발생한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의 경제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1933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추진한 정책을 일컫는다. 시장은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신념이 강했던 미국에서 뉴딜정책은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테네시강의 댐 건설이 뉴딜정책의 첫 사업이었고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출을 통해 고용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뉴딜정책의 핵심이다.

몇 달 전, 미국 의회는 코로나19 예산으로 3조달러를 승인하였다. 이 금액은 1930년대 미국의 뉴딜사업에 투여한 돈의 5배에 해당되는 규모이다. 뉴딜 사업 기간이 6년 동안이었다면, 미국의 코로나 예산은 단 6개월 만에 집행된다는 점에서 엄청난 규모이다. 그야말로 21세기판 뉴딜이라고 할 수 있다.

효율성과 수익이 중요한 관심사가 될 때는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이 힘을 얻지만, 위기의 시기에는 국민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 경제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게 되고 정부의 역할과 권한은 커지게 되어 이른바 큰 정부를 수용한다. 경제에서 소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작은 정부'와 비교하여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큰 정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 속에서 큰 정부가 주도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18세기 이후 근대사회의 출발부터 현재까지 우리 삶은 정부와 시장 양자 간의 역학 관계 속에서 규정되어 왔다. 특정 시기에는 시장에 주도권이 주어졌다가, 이어지는 시기에는 정부가 주도권을 갖는 역사적 순환이 이어져 왔다. 자유방임을 기본으로 하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는 큰 시장이, 1920년대 말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수정자본주의 시대는 큰 정부가 사회 변화를 주도하였다.

그리고 오일쇼크를 기점으로 세계 경제 위기가 오면서 다시 주도권은 시장으로 넘어간다. 수정자본주의 시대를 주도했던 케인즈를 비판하면서 시장의 자유와 논리를 강조한 하이에크가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하이에크의 사상을 수용한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를 필두로 하여 1980년대 이후부터 세계의 경제와 정치는 다시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가 주도하게 되었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점차 작은 정부와 큰 시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그 와중에 최근 발생한 코로나 위기 사태에서 각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역할이 커지는 상황을 근거로 이제 다시 균형추가 정부 쪽으로 이동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전의 작은 정부와 큰 시장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게 된 계기는 분명한 듯하다. 경제학자인 아나톨 칼레츠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를 이전의 자본주의와 구분하여 자본주의 4.0이라고 말한다.

이전의 자본주의가 정부와 시장을 정치와 경제를 둘러싼 적대적인 관계로 보았다면, 이제는 정부와 시장이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시장(기업)의 장점은 보장하되, 시장과 정부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시장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공생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자는 관점이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 해도, 코로나 사태가 가져온 우리 삶의 변화된 많은 것들은 지속될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불편함과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시장이 협력해서 조금이라도 우리 삶이 나아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뉴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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