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론, 행정수도 완성론 등이 무성하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운을 띄우고 정부·여당에서 일사불란하게 논의를 끌고 가는 형국이다. 충청 표를 의식한 미래통합당은 어정쩡한 자세지만 본격적인 논란이 불거지면 가만히 있기는 불가능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개헌론까지 들고나오는 마당에 언제까지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 부동산 정책 실패의 역풍, 단체장들의 연이은 성 추문 등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수 있는 '이슈의 블랙홀'이 현실화하기 전에 몇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용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는 것은 수도 이전이라는 사실부터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국회와 행정을 통할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소재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은 수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라고 했다. 국회와 대통령의 소재지가 수도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청와대와 국회를 옮기는 것은 따라서 대한민국의 수도를 이전하는 것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하거나 완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치적 선택이다. 헌재가 "이 사건 법률에 의한 신행정수도의 이전은 곧 우리나라 수도의 이전을 의미한다"고 못 박은 것도 그 때문이다.
헌재의 '관습헌법론'을 비판하며 국회에서의 특별법 제정으로 수도 이전이 가능하다고 하는 견해도 문제가 있다. 관습헌법론의 논거에는 개인적으로도 동의하지 않는다. 성문법 국가에서, 그것도 엄격한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 성문헌법을 가진 나라에서 헌법과 동등하거나 혹은 그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는 '관습헌법'은 인정하기 어렵다. 수도가 서울인 '사실'이 수백 년간 이어져 왔다고 해서 수도가 서울이어야 한다는 국민의 확신이 헌법적 차원의 '규범'으로 격상되었다는 논리도 수긍할 수 없다. 하지만 헌재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과 헌재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은 다르다.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은 헌재에 의해 명시적으로 변경되기 전까지는 존중되어야 할 선례이다. 일단 법으로 밀어붙이고 헌재의 위헌 심판을 받아 보자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최종 결정 시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를 혼란도 그렇고, 현재의 헌법재판관 구성으로 보아 정부·여당에 유리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도 헌재를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관으로 당연시하는 불편한 의견이다.
정치적 목적의 수도 이전론 역시 마땅치 않다. 당장은 심각한 부동산 문제의 해법으로 제기된 행정수도론이지만 비판이 일자 국가균형발전 명분을 덧붙이고 있다. 부동산 정책은 그 자체로 엄중한 민생 문제이고 반드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사안이다. 수도 이전은 부동산 문제에 대한 엉뚱한 해답일 뿐이다. 행정수도론이 나오자 세종시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론 역시 합당한 논거가 되기 어렵다. 국토균형발전은 헌법에서 요구하는 국가의 의무이다. 정권에 따라 부침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공공기관 이전 등을 통해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등의 이전을 재차 추진하겠다고 한다.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간의 정책 성과를 면밀히 검토한 후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이전한 공공기관과 그 직원들이 해당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 발전에 기여해 왔는가. 소요된 비용과 노력에 비해 성과가 크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지역 대학 졸업생에게 가산점을 부여하여 해당 기관의 취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균형발전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수도가 반드시 서울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 필요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 실패의 시선을 돌리려 하거나 선거에서 '재미 좀 보기 위해' 던지는 화두여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수도는 국가의 백년대계와 통합의 상징성 그리고 미래지향성을 염두에 둔 곳이어야 한다. 만약 수도를 이전한다면 개헌이나 국민투표 등 국민적 합의를 위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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