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당이 사기업이었다면 진작에 시장에서 퇴출당했을 겁니다. 당도 기업처럼 혁신해야 미래가 있어요."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진보 진영은 180석을 가져가며 사상 초유의 대승을 거뒀다. 반면 보수는 2016년 4월 20대 총선부터 시작해 네 차례 전국 선거에서 모두 패하면서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목도한 미래통합당 소속 인사의 말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닌 듯하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6월 18일 "시대변화에 전혀 적응하지 않는 보수는 정치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한 술 더 떠 김병민 통합당 비대위원은 "영국 보수당이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고 명맥을 유지해온 것은 선거에 패배하고 국민에게 철저히 외면당했을 때마다 변화하고 국민에게 다가가려는 몸부림 덕분"이라며 당의 변화를 강조했다.
이 모든 이야기는 한 곳으로 향한다. 보수 정당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 혁신으로 가치를 재창조한 GE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보수 혁신에 대해 "잘 모르겠으면 기업으로부터 배워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은 냉혹해 게으른 기업은 바로바로 처벌하기 때문이다. 현 기업들은 적어도 그 처벌로부터 살아남은 조직이다"고 했다.
여기 그 예가 있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 Company, GE)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세계에서 가장 시장가치가 높은 기업' 같은 수식어가 따르는 기업이었다. 그 배경에는 급진적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의 혁신이 있었다.
GE는 1876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세운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Edison General Electric)이 모태가 되어 발전한 기업으로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규모와 사업분야를 넓히면서 성장해왔다. 1981년 잭 웰치 회장이 취임했을 때도 매출과 수익은 호조여서 외견상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당시 GE는 170여 사업부와 40만명에 이르는 직원을 둔 거대 조직으로 관료화되고 있었고, 매출액의 85%를 차지하는 조명기기와 가전부문은 일본기업과 경쟁에서 밀리면서 시장점유율이 내려가고 있었다.
이에 잭 웰치 회장은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 구조를 핵심 첨단 서비스 3개 사업군으로 재편하고 업계 1·2위가 아닌 110여개 사업은 처분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조직 구성원이 실직자가 돼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잭 웰치 회장을 건물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사람만을 살상하는 중성자탄에 빗대기도 했다.
잭 웰치 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워크아웃과 베스트 프랙티스, 6시그마 등을 도입해 조직문화를 유연화하고 불량률을 낮추는 품질 관리에 힘썼다. 그 결과 그가 회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GE의 시가 총액은 40배 가까이 늘어났으며 S&P 500 기업 대비 2배 이상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보수정당도 파괴적 혁신 필요할 때
어쩌다 맛이 조금 변했다고 단골식당을 바꾸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오랜 시간 맛을 회복하지 못하는 중에 다른 '맛집'을 찾으면 발길이 끊어진다. 이 지경에 이르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통합당이 딱 그 상황이다.
당 내부에서 벌써 음식 맛이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꼽는 이유 중 하나가 당의 자산 활용 문제이다.
최근 통합당은 16년째 해오던 '월세' 생활을 끝낸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것이다. 중앙당이 이처럼 중앙당사 매입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자산 가치가 높은 시도 당사를 매각해서 '실탄'을 마련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통합당 대구경북 시·도 당사와 광주전남 당사를 팔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됐다.
그 근원은 지난 5월 통합당 한 관계자의 말이다. 당시 그는 "대구경북 시·도 당사는 대구 수성구 금싸라기땅에 있어 건물 가치는 200억원(실제로는 150억원 정도로 추산)에 달하지만 그 활용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시당·도당 모두 넓은 공간에 상주 근무인력이 서넛 밖에 되지 않는다. 임대였다면 당장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을 것"이라며 "심지어 5층 강당은 신년 인사 때나 쓸 뿐 그 외에는 놀고 있는 공간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광주전남 당사는 호남 사람들이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돌을 던지던 곳이다. 이런 곳을 당사로 쓰면서 표를 달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이런 공간은 그냥 두면서 중앙당은 매달 임대료로 2천만원을 내버리고 있다"고 했다.
이 무렵 또 다른 당 관계자는 제구실 못하는 '싱크탱크'에 문제 제기하며 "기업이었다면 진작에 없어졌을 조직"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비판이 팽배했던 탓인지 과거 '족집게 여론조사'와 정책 개발 역량으로 이름을 날렸던 보수정당의 여의도연구원은 실제로 비대위가 들어서고서 '해체' 수준의 개혁 작업이 진행되는 수모를 겪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연의 '2019년도 정기회계보고서'에 따르면 44억9천285만원의 정당지원금 포함, 75억8천883만원의 수입을 거둬 58억7천56만원의 지출을 기록했다. 전체 지출액 중 91.3%에 달하는 53억5천740만원이 정책개발비로 쓰였다. 인건비 지출액은 1억916만원으로 1.9%에 그쳤다.
외형상 정책개발비 비중이 높지만 실상은 다르다. 연구원 인건비와 업무추진비, 운영비도 정책개발비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여연은 4대 보험과 퇴직연금, 일부 직원 연봉 비용으로 37억3천279만원을 정책개발비에서 지출했다. 객원연구원·정원 외 인력 비용과 연구원 사무실 운영비, 직원 복지 비용 등이 모두 43억1천919만원으로 전체 정책개발비 지출액의 80.6%에 이른다.
통합당 한 의원은 "중앙당 사무처 당직자 정원이 100명으로 고정되는 바람에 정책연구소가 초과 인원 고용을 유지하는 '꼼수'로 쓰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14년 19명이던 박사급 인력이 지난해 6명까지 줄었다. 2017년 이후 3년 동안 원장이 다섯 차례 바뀌었지만 모두 이를 손놓은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제도화, 현대화, 개방화가 해법
정치학계에서는 정당 혁신의 기본은 '제도화'를 통한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제고, 책임성 확보에서 시작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의 정당은 법적 제도이자 공식 조직이지만 대표나 지도부 의사에 따라 규칙과 시스템이 무시되거나 무력화되는 인치(人治)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처럼 낮은 제도화 수준은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극도로 낮추어 정당 운영의 혼란을 초래하고, 비민주적 조직으로 인식되는 원인이 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통합당의 지난 공천을 보면 공당다운 안정성, 예측 가능성이 있었다고 하기 어렵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전신이던 새정치민주연합 시절부터 경선, 공천제도 같이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규칙은 사전에 확정하고 이해관계에 의한 변경을 금지하는 등 규율을 강화하면서 공천 잡음도 적다"고 비교했다.
또 혁신 과제로 정당의 이념, 조직, 운영 방식 등 전 영역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순히 리더십이나 조직·기구 재편 같은 지엽적인 것이 아닌 근본적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의 일부 강성 당원, 영남 중심 구조에서 탈피해 '지지층 중심 정당'으로 '수직형 조직 정당'에서 '네트워크 정당'으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난 총선 참패 원인 중 하나는 이른바 일부 기독교계 인사와 '아스팔트 우파'의 목소리가 당무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부에 치중하기 보다 지지층 전체와 소통을 강화하고 이들이 당이 나아갈 길을 설정하는데 참여토록 해야 한다"면서 "정당 하부 조직이 아닌 네트워킹을 통해 역량을 상호 증진하는 방식으로 당이 개방돼야 시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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