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정조와 용주사... 바르트와 추미애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북경 천주교 남당 성화…홍대용, 박지원 극찬

북경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선무문 역에 내리면 천주교 남당이 우뚝 솟아 맞아준다. 1605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명나라 황제 만력제의 도움으로 지은 뒤, 여진족의 청나라 순치제 때 아담 샤알이 확장했으니 400년이 넘는 역사다.

1644년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가 아담 샤알을 만나 천주교에 귀의한 뒤, 서양 신부를 조선으로 데려가겠다고 요청한 곳도 남당이다. 남당은 신문물을 갈망하던 실학자들에게 순례 코스였다. 김창업은 1712년 '노가재연행록', 홍대용은 1765년 '을병연행록', 박지원은 1780년 '열하일기'를 통해 한결같이 천주교 남당의 예수님 그림, 즉 성화를 보고 서양화풍에 깊이 감동받았다고 적는다.

북경 천주교 남당
북경 천주교 남당

◆김홍도 통해 남당 성화가 용주사 탱화로

1783년 정약용의 매형 이승훈이 남당에서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데 이어 1789년 조선 최고 화가 김홍도가 북경에 다녀왔다. 화가 김홍도가 왜? 정조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효심 깊던 정조는 배봉산 자락 서울시립대 언저리의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 영우원을 1790년 왕릉(융릉)으로 승격시켜 화성에 새로 만들고, 능을 지키는 능침 사찰로 용주사를 세웠다.

이때 대웅전에 그린 후불탱화(경기도 유형문화재 16호)에는 서양의 음영법이 녹아들었다. 실학자들이 탄복하던 남당의 성화를 김홍도가 보고 와서 서양화법을 녹여 그렸던 것이다. 문화재청은 현존 작품은 소실된 김홍도의 원본을 본떠 후대 화가들이 새로 그린 것이라고 기록한다.

◆정조의 면학 포용 정신, 조지훈의 시혼 깃든 용주사

당대 노론 집권 세력은 천주교를 포함해 청나라 문물을 탄압했지만, 정조는 달랐다. 천주교 성화 기법을 배워 불교 탱화를 그리도록 하는 실용적인 포용 정신으로 신문물을 배우자는 중인, 서얼 출신 실학자들을 등용했고, 서양 서적을 모아 펴낸 청나라 백과사전 "고금도서집성"을 규장각에 비치했다. 정조가 100년에 한 번 나올 재상감으로 칭송한 정약용이 이 책의 '기기도설'을 독파해 거중기를 개발하고, 수원화성의 기본 설계도를 완성한 것은 잘 알려진 대로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슴에 담는 일종의 민족시 '승무'는 조지훈이 스무 살이던 1939년 용주사에서 승무를 보고 시상을 가다듬어 '문장'지에 발표한 시다. 이렇듯 용주사는 우리 민족 문화예술사에 실용면학, 개혁, 향내 나는 문학의 산실로 아름다운 획을 긋던 명소다.

추미애 장관이 지난 8일 연가를 내고 윤석열 검찰총장의 검언유착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박탈을 요구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추미애 페이스북 캡처
추미애 장관이 지난 8일 연가를 내고 윤석열 검찰총장의 검언유착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박탈을 요구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추미애 페이스북 캡처

◆미디어 사진의 여론 공작…오염된 용주사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용주사에 머문 사진이 미디어에 실렸다. 소쉬르의 기호학을 미디어 분석에 적용한 롤랑 바르트는 미디어가 싣는 사진은 겉에 드러난 이미지, 기표(記標)에 불과하고 속뜻, 기의(記意)가 숨겨졌다며 이를 지배 집단의 이데올로기 공작으로 규정했다. 바르트는 1955년 7월 프랑스 주간지 파리마치 326호 흑인 병사의 거수경례 표지 사진에 주목했다. 당시 프랑스는 1954년 5월 베트남 디엔비엔푸 전투 패배로 식민지 베트남을 잃고, 1954년 11월 알제리 독립전쟁 발발로 고전 국면이었다.

바르트는 흑인 청년의 경례라는 '기표'에는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아프리카 출신까지 애국주의로 뭉치라는 '기의'가 담겼다며 제국주의 미화 공작의 이면을 파헤쳤다. 사찰에서 마음을 비운 듯한 사진, 즉 '기표'에는 갈등 중인 윤석열 검찰을 속세의 찌든 권력으로 대비하려는 엉큼한 '기의'가 도사린다. 바르트의 예리한 기호학적 분석으로 본심을 들킨 권력과 미디어의 저급한 사진 정치술은 감동은커녕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이개 장관(?)…'살아 있는 권력 수사' 지원해야

추 장관의 낡은 수법은 청와대 탁현민의 상투적인 '슈도 이벤트'(꾸며낸 사건) 연출과 맥이 닿는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밑으로부터 다원적 가치의 수렴이지만, 추 장관은 걸핏하면 "내 명을 어겼다"는 식의 오만과 독선으로 정치 문화를 "왕이 곧 국가"(L'État, c'est moi)라는 17세기 프랑스 절대왕정의 루이 14세 때로 퇴행시킨다. 한동훈 검사장이 추 장관을 '일개 장관'으로 묘사하자 진중권은 부동산 행정까지 오지랖 넓히는 '이개 장관'이라고 고쳐 불렀다. '이개 장관'하거나 용주사 '슈도 이벤트'할 시간에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명대로 윤석열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돕는 것이 그렇게 좋아하는 상명하복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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