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서 났다면 술이나 얻어먹을 수 있나……."
암울한 식민지 사회에서 주정꾼 노릇밖에 할 수 없는 지식인이 술을 먹는 이유를 그의 아내에게 말하는 내용으로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의 한 구절이다. 학자금, 전월세보증금, 아파트중도금, 주택자금 등 대출 밖에 낼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술 먹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식민지 하의 지식인을 떠올리게 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도대체 그 많은 대출금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한국은행은 정부로부터 채권을 받고 돈을 빌려 준다. 정부는 그 돈으로 인프라를 건설하고 복지 재원으로 쓰며 민간에게 보조금도 준다. 그렇게 돈은 돌고, 누군가는 월급을 받고, 또 누군가는 수익을 얻으며 그 중 일부를 은행에 저축한다. 은행들은 이 돈을 다시 대출해 주며 새로운 돈은 계속 창출된다.
글로벌 경제도 마찬가지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유럽에 무기를 팔고 금을 받았던 미국은 그 후 달러를 기본으로 금을 바꿔주는 브레튼 우즈 체제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등으로 인해 국제수지 적자에 놓였던 미국은 달러를 계속 찍어내었다. 그 결과 달러 가치는 급락하고, 일부 국가들은 금(金)인출을 요구하였다. 결국 금 태환 정지 선언인 닉슨 조치(1971년)로 브레튼 우즈 체제는 막을 내렸다. 이때부터 각국 정부는 금 없이 마음대로 돈을 찍어낼 수 있게 됐는데, 연일 국제 금값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최근 뉴스들은 이때부터 잉태된 셈이다.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인 우리나라는 수출주력 국가들의 경제 상황에 따라 국가경제가 좌우되기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내수경제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최근 선진국들의 보호무역 강화, 장기 저성장 시대의 소비 패턴, 고령화·저출산의 국내 현실은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키고 내수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불경기 극복을 위한 부양책으로 정부지출을 늘리고 저금리 기조를 선택하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저금리가 기업의 신사업이나 설비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갈 데 없는 유동성은 부동산으로 몰렸다. 금리가 너무 낮으면 예금에 매력에 못 느낀 자금들은 부동화되는데 이 자금들이 부동산에 몰릴 경우, 투자와 회수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버블이 생기게 된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동자금이 처음으로 1천100조원을 넘어서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부동산 불패'라는 신념이 우리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부동산 투자로 남들만큼 못 벌어 배 아픈 사람은 있어도 손해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들릴 정도니 말이다.
더 오를 거라는 무주택자들의 불안심리와 주변에서 들리는 갭투자의 성공담은 대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냉온탕을 오가는 부동산 정책들과 내로남불의 끝판왕이 돼버린 기득권층의 행태들은 국민을 분열시켰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정부의 규제들이 탐욕의 부동산 시장에 패배할 때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는 서민들의 마음은 불안해져만 간다.

대출금 회수를 위한 금리인상은 부동산 안정의 대책이 될까?
우리나라 가계대출의 대부분은 변동금리부 대출이라고 한다. 이는 대출 이자율이 시중금리 상승에 따라 올라가므로 가계이자 부담이 늘고 가처분소득은 줄어 오히려 소비가 위축될 소지가 있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약 39만가구가 빚 갚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고위험가구가 된다는 과거 한국은행의 분석도 있었다.
그렇다면, 공급증대는 그 대안이 될까? 신도시 건설, 재건축, 재개발 등 공급확대는 부동산 안정화에 일정 부분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급량을 늘려도 거주 환경이 우수한 선호지역에서 살고 싶은 잠재 수요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내 집을 마련해도 더 편리하고 더 좋은 거주환경에 대한 욕구는 부동산이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누구나 돈이 있으면 강남처럼 부촌에 살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불편한 진실을 하나 소개할 까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자는 부동산과 주식이 올라 부자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부자들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부자들을 욕하거나 부러워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제 부동산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사회적·경제적 신분계층을 만들었고, 부동산 양극화라는 괴물을 탄생케 했다. 이제 부동산 문제는 가격의 안정이나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섰다. 부동산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진영대결이 돼버렸다.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생각된다.

남의 돈인 대출로 갭투자에 성공한 수혜자들과 남의 돈 무서워, 열심히 저축만 하고 산 부동산 정책의 피해자들은 운명처럼 한 나라, 한 공간에 같이 살고 있다. 누군가는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이고 시장경제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땅 한 조각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그의 국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말한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한 세기 전에 던진 질문에 대해 그 누군가는 답을 해줘야 한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600조원을 훌쩍 넘었다. 세계경제는 바닥을 기고, 코로나19 팬데믹은 종료되지 않았다. 부동산이 만든 불로소득은 일부에게 돌아가겠지만, 그 거품이 만든 폭탄은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모두에게 터져 피해를 입힌다. 그러나 그 피해 정도는 민주적이지 않다. 빚이 많은 중산층들은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기존에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더 가난해진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움을 준 자본주의가 두 얼굴을 가진 '지킬앤하이드'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다.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는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 고!"
알뜰살뜰 저축하며, 하루하루 노동의 대가로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은 지금의 세태를 보며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 몹쓸 사회가 왜 대출을 권하는 고!"
이상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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