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퇴계 선생은 매화와 친구였다

장병관 대구대 도시조경학부 교수

장병관 대구대 도시조경학부 교수
장병관 대구대 도시조경학부 교수

최근 산림청에서는 정원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원부서를 발족시키고 '수목원·정원법'을 제정하였다. 제정된 정원법에서는 국가정원, 지방정원 그리고 민간정원 등 여러 유형으로 정원을 구분하고 있는데 국가정원 제1호로 순천만 정원이 지정되었다. '정원은 자연이다'라는 말을 생각한다면 정원이 산림청에 소속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동시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정원의 필요성을 실감하는 큰 이유는 정원이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깨닫고 존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퇴계 이황은 대유학자이자 철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정원설계가였다. 그는 이론의 틀을 벗어나 항상 자유롭고 독창적인 생각으로 집과 정원을 조성했다. 퇴계 선생은 공직에서 물러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집 한서암을 지을 때 개울에 인접해서 초가집을 지었다. 홍수의 피해를 모를 리 없었지만 물소리가 좋아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집 주위에 소나무·대나무·매화나무, 즉 삼우(三友)를 심어 작은 정원을 만들었으며, 이에 더하여 국화와 과(오이 또는 모과로 해석), 즉 이우(二友)를 더하여 오절(五節)이라 하였다.

지금 우리의 시각에서 한서암은 어찌 보면 정원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나 조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의 물소리와 절개를 뜻하는 다섯 종류의 나무와 식물로 이루어진 초기 정원은 청빈과 절개를 자연의 순리로서 마음에 익히고 실천해 간 퇴계의 사상을 실현한 장소였다.

한서암 시절 몇 년 후 퇴계는 계상서당을 짓고 이곳에서 10여 년을 보냈는데 그 정원에는 직사각형의 작은 못을 조성하고는 과를 대체해서 연(蓮)을 심었다. 연과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국화, 여기에 퇴계 자신을 더하여 이 정원을 육우원(六友園)이라 했다. 이처럼 퇴계는 자신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생각했음은 물론 다섯 가지의 식물을 인격화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몸소 보여 주었다.

자연 속 개울을 낀 정원은 도산서당에도 조성되었다. 도산서당에 퇴계는 정사각형 연지(蓮池)인 정우당과 작은 개울 건너 화단을 만들었다. 거기에 평생의 친구였던 매화, 대나무, 소나무 그리고 국화를 심고 이곳을 절우사라 했다. 그는 식물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두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그렇게 삶을 보냈다. 한서암의 조촐한 정원도, 계상서당과 도산서당의 정원도 모두 퇴계 선생이 평생 추구해 온 자연 합일의 삶을 보여주는 곳, 말하자면 이상과 삶이 하나로 어우러져 만들어진 곳이었다.

소박하면서 상징적인 퇴계형 정원 양식 즉 연지와 인격화된 식물이 하나의 세트로 조성된 정원은 그를 따르는 많은 후학들의 정원 구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전통정원의 식물 선택과 배치에는 유학자들의 사상이 깃들어 있었다. 전통정원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정원의 주체자인 유학자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퇴계 선생은 "저 매화에게 물을 주어라"는 유언을 남기고 운명하셨다고 한다. 긴 세월이 흐른 현재, 절우사도 육우원도 퇴계 선생의 손길이 닿았던 그 시대의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리되지 않은 채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정원은 우리가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자연이다. 우리는 4계절 정원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찾고 생명의 소중함을 배운다. 이번 여름 모두 한번쯤은 정원에 서서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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