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목의 아침놀] ‘가짜, 쓰레기’라 말하는 아픈 사회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요즘 세간에서 자주 듣는 말이 '가짜' 아니면 '쓰레기'다. '가짜'란 '참인 것처럼 꾸민 거짓인 것'이다. 겉으론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사이비'(似而非),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는 노래의 '짜가'와 같다. 그리고 '쓰레기'란 더 이상 쓸모없어 내다 버릴/버린 물건이나 사람을 뜻한다.

세상에는 정말로 가짜도 쓰레기도 있다. 아울러 그렇지 않지만 모종의 전략으로 억울하게 그렇게 몰려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가짜니 쓰레기니 하는 말이나 이들과 합성된 말들–예컨대 '가짜뉴스' '기레기' 등–을 들으면 우선 기분이 상한다. 평소 좋게 생각했던 사람이나 사물들, 뉴스나 정보에 이 말이 붙으면 믿음이 사라진다. 이처럼 부정적 선입견을 갖는 것은 언어의 마력이다.

따라서 가짜니 쓰레기니 하는 호칭은 무언가의 기존 가치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혼돈으로 몰아가기에 탁월한 전략이다. 그렇게 낙인찍히면, 본래의 것과 이후의 손상된 이미지가 뒤섞여 긴가민가, 뭐가 뭔지 모를 상황에 놓인다. 원래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일단 그렇게 '호칭'되고 나면 그렇게 '규정'돼, 사실과 진실은 묻지 않고, 그렇게 '인식'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왜, 무슨 목적으로 이런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담는가?

먼저, 가짜와 쓰레기를 진실 그대로 알리려는 것이거나, 반대로 완전히 거짓 조작하여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어느 쪽이든 시간이 지나면 사실,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나는 맞고 상대는 틀리다'는 것을 선전, 홍보하여 자신이 도덕적, 사상적으로 가치 우위에 서려 상대방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그들은 수세에 몰렸든 아니든 상대방 비방의 목소리를 높여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여 상황을 반전하려 한다. 이들에게 사실과 진실은 뒷전이다.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나만 그런가? 너도 그렇다!'는 것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즉 자신과 상대방이 피차일반임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들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뭐, 그게 그거지!'라며 공감하도록 하여, 사실이나 진실을 흐려 놓으려 한다. 상대방의 공격, 비판에 물타기를 하거나 물귀신 작전에 돌입하는 것이다. 상대가 제기한 문제가 억지이고 어불성설임을 적극 알려 상황을 반전하려는 전술이다.

가짜니 쓰레기니 하는 달갑지 않은 이런 종류의 말들이 자연스레 유통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우선 언어의 사회적 수요, 공급 생태계가 있음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시장 규모가 제법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만큼의 언어 유통시장을 가진 우리 사회의 몸 상태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적지 않은 내홍을 겪고 있고, 어딘가 앓고 있음을 알려준다.

물론 가짜니 쓰레기니 하는 말들은 주로 정치적 맥락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깎아내릴 때 쓰는 것이다. 그런 만큼, 시장을 이끌어가는 장본은 역시 정치인들이거나 그 주변 인물들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이분화되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저급 언어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에밀 시오랑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를 다시 읽었다. 뇌리에 남는 한 구절을 곱씹는다. 의식 속에 몸이 존재한다는 것은 삶이 병들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위, 심장 등을 계속 느끼는 것, 몸의 작은 부분까지도 의식되는 것, 그것이 병이 아니겠는가? 맞는 말이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가짜니 쓰레기니 하는 말들도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아픔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구태여 그런 말도 할 필요가 없다. 말을 한다는 것은 '의식' 속에 그런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 어딘가가 불편하고 아프다는 증거이다.

지난날엔 '나라의 대사는 제사와 전쟁에 있다'(國之大事, 在祀與戎)고들 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가짜니 쓰레기니 하는 언어의 병 또한 '국가의 대사'로서 치유해 가야 마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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