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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랜선 넘어 일상까지 침투한 '혐오'…우리는 피해자이자 가해자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박민영 지음/ 북트리거 펴냄

2017년 5월 17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1주기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침묵행진을 하고 있다. 매일신문DB
2017년 5월 17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1주기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침묵행진을 하고 있다. 매일신문DB
책
책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온라인은 바야흐로 '혐오 시대'다. 온라인에서 청소년은 공짜 급식을 먹는 '급식충', 엄마는 자기 자식만 아는 '맘충', 아저씨는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개저씨', 노인은 청년에게 부담을 지우는 '연금충'이라는 오명을 쓴다. 이뿐일까. 젊은 남녀들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서로를 '한남충' '김치녀'라며 폄하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혐오표현이 랜선을 넘어 일상까지 침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혐오표현을 접한 청소년은 68.3%로 나타났다. 온라인(82.9%)에서 혐오표현을 접한 사례가 가장 많았지만, 학교(57.0%)나 학원(22.1%)에서도 혐오표현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약육강식의 시대, 혐오의 일상화

일반적으로 차별의 대상이라고 하면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 이주 노동자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세대, 모든 사람, 모든 집단이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약육강식, 승자 독식이 판을 치는 시대에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폄하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혐오사회는 벌레를 의미하는 충(蟲)이라는 단어 하나로 손쉽게 돌아간다. 우리 사회는 어떤 특정한 속성을 가진 집단에 '~충'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붙이는 간단한 방법으로 이들을 차별하며 배제하며 이들에 대한 편견의 벽을 더 높게 세운다.

신간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는 이처럼 혐오가 일상이 되어 가는 우리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모든 형태의 혐오 현상을 전방위적으로 살핀다. 저자는 혐오의 양상을 대상에 따라 ▷'세대'(청소년, 20대 청년, 주부, 노인) ▷'이웃'(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세월호 피해자) ▷'타자'(이주 노동자, 조선족, 난민, 탈북민) ▷'이념'(일본의 혐한, 정치, 이슬람, 빨갱이)의 네 분야로 나누어 우리 사회의 혐오 현상의 작동 방식을 파헤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우리 사회에 혐오 바이러스가 만연한 이유는 무엇인지, 정치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논리적 맥락 속에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혐오 현상의 실질적인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범답안을 이미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경계선을 긋고 배제하던 이, 나와 뼛속부터 다르다고 차별하던 이들을 이해와 배려, 존중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2018년 6월 7일 대구지검 서부지청 앞에서 대구퀴어축제 조직위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단체에 대해 사실 왜곡과 혐오 조장을 멈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매일신문DB
2018년 6월 7일 대구지검 서부지청 앞에서 대구퀴어축제 조직위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단체에 대해 사실 왜곡과 혐오 조장을 멈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매일신문DB

◆건설적 논의 봉쇄하는 혐오…이득 보는 건 기득권

혐오는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어떤 대상이든 혐오 프레임을 씌워버리면 더 이상 그들을 둘러싼 이슈에 대한 어떤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도 이뤄지지 못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현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통해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차별과 배제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는 모든 사회 문제가 '혐오'라는 프레임 안에 갇혀 버린다.

혐오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혐오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약자에게 전가시키며, 그 자체로 건설적인 논의를 봉쇄시킨다. 혐오 프레임에 갇힌 사람은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예컨대 혐오 현상에 대한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에게 그저 '진지충'이라는 비아냥이 돌아올 뿐이다.

혐오 매커니즘이 공고할수록 이득을 보는 것은 기득권 세력이다. 우리 사회가 갈기갈기 찢어져 서로를 할퀴고 있는 가운데 지배 세력은 저 멀리서 뒷짐을 지고 바라보며 가만히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민주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에는 시민들이 역사의 주인이자 혁명의 주체였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민중은 단결된 힘을 잃어버렸고, '민중은 개돼지'라는 자조적인 표현까지 나온다.

혐오가 난무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민중의 고통, 불안, 분노가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부당한 현실에 맞서 개혁과 혁명의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에너지가 역설적이게도 갈 길을 잃은 채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향하는 것이다. 저자는 혐오를 줄이기 위해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경제적 격차를 줄이며, 공동체 지향적 가치를 담은 진보적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독자가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점은 혐오를 얘기할 때 우리 가운데 누구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혐오와 거리를 두고자 하는 현대인에게 차별과 배제, 편견은 늘상 우리와 함께하고 있으며,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도 바로 나"라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코로나19 사태로 국제사회의 혐오는 중국인에게 화살을 향했지만, 성 소수자 등을 거쳐 결국 우리 모두에게로 귀결되었다. 결국 혐오는 너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다. 368쪽, 1만6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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