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박수연 씨 부친 故 박만득 씨

박수연 씨 부친 故 박만득 씨 생전모습. 가족제공.
박수연 씨 부친 故 박만득 씨 생전모습. 가족제공.

나는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아 부모님께 아픈 손가락이었다. 7남매의 막내딸인 나는 위로 오빠가 4명, 언니가 2명 있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백방으로 다니며 내 다리를 고쳐주려고 애를 쓰셨다. 또 아프다는 이유 때문인지 늘 나에겐 배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다. 청소년 시절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언제나 셋째, 둘째 오빠에게 나를 업고 등하교를 하도록 꼭 당부하셨다. 언제나 아버지에겐 내가 최우선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나는 언제나 당당하게 자랄 수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품에서 나는 씩씩하게 잘 자랐다. 모든 걸 해결해주는 아버지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아보면 정말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정말 아버지께서는 한시도 이 못난 딸의 아픔을 잊지 않고 보살펴 주셨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의술도 발달해 스무 살쯤 큰 오빠 지인 소개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경대병원에 갔다. 사실 왜 그곳에 가는지조차 당시엔 몰랐다. 아버지는 의사 선생님의 손을 부여잡고 '내 딸 다리 꼭 고쳐주세요'라며 눈물을 흘리셨지만 아무런 영문을 몰랐다. 그땐... 그렇게 나는 왼쪽 다리 수술을 받게 됐다. 아직도 눈물을 흘리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만 감으면 떠오른다. 어찌 그리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는지 돌이켜보면 죄송스러우면서도 슬프다. 당시에 양쪽 다리 모두 소아마비로 인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수술을 받고 여태껏 불편한 다리로 생활해왔지만, 다리를 볼 때면 아버지 생각이 더 많이 난다.

또 수술하지 않은 오른쪽 다리마저 오랜 농사일로 뒤틀려 불편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가족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 어떤 상황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과 다른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참 아찔하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감사하다. 살면서 철없이 살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지만,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그 결을 따라 살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때 왜 몰랐을까요. 지금 생각하니 아버지께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후회되는 일이다. 이제라도 전하고 싶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하늘에서는 더는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막내딸 수연 올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