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태선의 디자인, 가치를 말하다] 요즘 라떼는...

김태선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디자인대학 산업디자인과 교수
김태선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디자인대학 산업디자인과 교수

"라떼는 말이야…." TV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떤 출연자가 옆에 있는 다른 출연자에게 이 표현에 대해 물으니, 꼰대를 일컫는 말이라고 간결한 설명을 전했다. '왜? 라떼와 꼰대가 무슨 연관인데?' 이해하진 못했지만, 신조어를 알게 된 것으로 자족하고, 일단은 넘어갔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궁금증은 가시질 않아서, 찾아봤다. 인터넷 검색창에 '라떼'를 쓰자마자, 연관검색어로 등록된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가 떴다. 이 말은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 어른'들이 자주 쓰는 상투적 표현을 놀이화(化)한 멘트다. 말하자면, 요즘 애들은 '꼰대 짓'을 '꼰대 놀이'로 바꿔 놨다. 요즘 애들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뜨끔했다. 혹시 나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지 기억을 살핀다. '나 때는 말이야, 예전엔 말이지', 이 표현에는 지나간 시간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지나간 시간이 문화적 힘을 갖게 되면, 우리는 이를 '레트로'(retro-respect의 줄임말)라고 부른다. 그렇지 않아도 요새 레트로가 대유행이다. '힙지로' '미스/미스터 트롯' '싹쓰리'까지.

일상 제품에서도 레트로 스타일이 인기를 얻고 있다. 스메그(Smeg)의 시그니처 제품인 FAB 시리즈. 이 시리즈는 이탈리아 가전제품 기업인 스메그가 1950년대 스타일에 영감을 받아 1990년대에 디자인한 제품 라인이다. 1950년대 당시 가전제품에서 유행하던 동글동글하고 작고 깜찍한 형태에 블랙, 빨강, 파랑, 파스텔민트, 분홍, 라임 등의 색상에 크롬 손잡이로 사람들의 눈길을 잡는다. 그리고 제품 전면에 붙어 있는 S, M, E, G라는 4개 글자의 반짝이는 로고는 멀리서도 스메그임을 알려준다. 1997년 출시되자마자 화제가 되었고, 국내에는 2013년 처음 소개되었다. 당시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의 팝업 매장에서 국내에 첫선을 보이자마자 준비된 물량이 다 팔려 나갔다. 한철이겠지 했던 스메그의 인기는 아직도 여전하다. 일명 '강남 아줌마'에게 한정된 관심이라는 평가를 넘어 1인 가족, 젊은 층 등을 중심으로 타깃을 확장하며, 프리미엄 가전으로 가구와 가전의 경계를 허물고 집안 인테리어의 아이콘이 되었다.

가전업계는 스메그의 성공 요인으로 획일화된 시장에서의 차별화된 디자인을 말한다. 이를 방증하듯 요즘 레트로 대신 뉴트로(뉴 레트로, New Retro의 줄임말), 영트로(영 레트로, Young Retro의 줄임말)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요즘 레트로'는 중장년층에게 묵직한 추억을 파는 대신, 요즘 사람들에게 새로운 놀이가 되었다. 최신 스타일이 아닌 과거의 스타일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 복붙(복사붙이기)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질은 지키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더했기 때문이다. 종래의 레트로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라면 요즘 레트로는 '변하지 않는 지속적인 가치'를 말한다. 변화와 혁신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본질을 바꾸고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은 지키면서도 본질이 새로운 가치가 되도록 하는 방법에 있다. 본질을 놓치면, 꼰대 놀이가 아니라 젊은 꼰대가 되고, '예전엔 말이지'가 '예전 같지 않네'가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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