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의료 전문인력 증원은 신중해야 한다

최재갑 교수(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최재갑 교수(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직업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로 'job' 'occupation' 'vocation' 'profession' 등이 있다. 우리말로는 모두 '직업'으로 번역되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가지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이를테면 'job'이란 생계를 위해서 정기적으로 보수를 받고 하는 일을 뜻하는 것으로 가장 작은 단위의 직업을 나타내는 말이고,'occupation'은 'job'보다는 큰 개념으로서 구체적인 직업의 분류를 뜻한다. 즉 학교 선생님을 예로 들면, 'job'은 교사이지만 'occupation'은 교육자이다. 'vocation'은 종교적인 소명으로서의 직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profession'은 특별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고 자격의 검증이 요구되는 직업으로서 흔히 '전문직'으로 번역된다. 미국의 경우 전문직은 대부분 일반 학부를 졸업한 후 대학원 과정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분야이며, medical school, dental school, law school 등이 대표적인 전문직 교육기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의사, 치과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이 되기 위해서는 6~8년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의사와 치과의사 경우에는 그 후에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 4~5년의 수련과정을 마쳐야 한다.

이처럼 의사를 양성하는데 10~13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의사의 수급문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특히 의사나 치과의사의 경우에는 직종 특이성이 큰 반면에 진로의 탄력성이 부족해서 외부 여건의 변화로 직업을 바꾸려고 해도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의대나 치대의 신입생 입학정원의 증원은 신중해야 한다.

의사 수가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의사 수가 너무 많아도 의료비의 과다 지출과 의료 질의 저하와 같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나라마다 적정 수의 의료인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동안 의대와 치대의 신설이 너무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아서 실망이 컸었다. 의료인력 수급에 대한 장기적 연구나 전망을 바탕으로 의·치대가 신설되었다기 보다는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설립인가를 내주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현재 전국에 있는 41개 의과대학 중에 21개가 1980~90년대에 신설되었는데, 한꺼번에 많은 의대가 신설되다 보니 기초의학 교수요원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개교함으로써 부실교육 논란이 크게 일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의학교육평가제도가 도입되었고 평가기준에 미달되는 의대를 폐교시키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치과대학의 경우에도 전국의 11개 치과대학 중에 호남에 4개, 서울에 3개, 영남에 2개, 충청과 강원에 각 1개가 있어서 호남지역에 심한 편중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도 치대 신설이 장기적인 인력 수급 계획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이번에 정부가 지역간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고 역학조사관, 의과학자 등 공공분야 의료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의대 신입생 4천명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 물론 특정 분야의 전문의 수가 크게 부족하고 특히 농촌지역에 의사 수가 적어서 의료서비스 수준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의사의 절대 수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기 보다는 의료정책의 실패 때문에 초래된 결과라는 것이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이다.

의사들에게 농촌에서 근무할 여건을 마련해주고 의사들이 양심에 따라 소신껏 진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선행되지 않는 한 정부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최재갑 경북대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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