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가슴을 후벼 파는 말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돌아가신 은사님은 글을 쓸 때 몇 가지 당부 말씀이 있었다. "간결하게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작성해라. 초고가 나오면 50번 정도 천천히 읽어보아라. 생각이 없는 책을 함부로 내지 마라. 쓰레기 같은 글로 나무를 죽게 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범죄행위다."

이 말씀은 글쓰기에 대한 엄중한 자세를 요구하는 가르침이었다. 흔히 글을 잘 쓰기 위해 '삼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많이 읽고(多讀), 많이 쓰고(多作), 많이 생각하라(多商量)" 지식공유사회에서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소리다. 대중지성을 손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초(超)연결사회에서는 지식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고, 통합・조정하는 '코디네이터'의 능력이 더 필요하다. 그 원천의 기본은 '생각하는 공감능력'이다. 생각 없는 책읽기와 글쓰기는 기본체력 없이, 마라톤 완주코스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초짜와 같다.

우리의 일상은 메시지로 긴밀하게 서로 소통한다. 소통의 기본은 말하기와 듣기다. 최근 단골 선술집에서 불편한 사건이 발생했다. 친한 사장의 생활개그가 너무 웃겨서, "가시나! 완전히 미쳤구나!"라고 기분 좋게 사투리말로 맞장구를 쳤다. 다음 날 한 통의 정중한 문자가 왔다. "저도 고향이 경상도라, 대표님 말에 악의가 없는 줄 알지만, 대구 사투리를 모르는 주위의 알바생들이 주인을 무시하는 '언어폭력'이라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음에는 서울말로 꼭 맞장구 쳐주세요."

한마디로 공감능력이 부족했다. 내 위주로 소통을 해석했다. 실수를 바로 사과했다. 소통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부터 시작된다. 공감능력이 없는 일방적 소통은 갑질의 사회적 폭력이다. 생각 좀하면서 소통할 나이다.

요즘 나보다 더 공감능력이 없는 정치권의 괴물들이 세 치의 혀끝으로 시민들의 애닮은 삶을 가슴속 깊이 후벼 파고 있다. 예리한 빈정거림의 칼날을 사용하고 있다. "부산은 초라하고, 서울은 천박한 도시다. 피해자의 2차 가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 박 시장이 죽음으로서 답하신 것이 아닐까. 월세가 정상,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 온다. 집을 사고팔면서 차익을 남기려는 사람은 범죄자다." 이제 정치권에게 소통의 품격을 바라지 않는다. 최소한 주권자에게 막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자의 메시지 품격이 천박하면, 불통의 매듭이 꼬이기 시작한다.

소통은 존중이다. 최근 아내가 묻는다. "당신, 다음 생에도 나하고 결혼할 거야?"/ "안 해요. 내가 너무 고생시켜서. 다음 생에는 다른 남자와 편하게 살아!"

소통은 배려다. 후배가 친절하게 대답한다. "너는 2%가 부족해."/ "고맙습니다. 형님! 98%를 인정해주셔서…"

곤란한 소통의 질문은 고도의 답변기술이 필요하다. 오만하게 불통하다가, 옹골지게 민심에게 반격 당한다. 역사의 오랜 사회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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