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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허필(1709-1768), ‘총석도'(叢石圖)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수묵담채, 45×80㎝, 삼성미술관리움 소장
종이에 수묵담채, 45×80㎝, 삼성미술관리움 소장

연객(烟客) 허필은 강세황과 마음으로 서로 알아주는 지심우(知心友)였다. 허필에 대한 기록 중 "늦은 나이에 성균관에 머물며 진사가 되었는데, 성균관 유생들의 부채는 허필의 그림이 아니면 손에 잡지 않았다. 담배 피우기를 좋아해 연객으로 호를 삼았다. 성균관 유생은 팔도에서 뽑혀 올라온 수재였지만 허필의 문장과 그림이 그 가운데 으뜸이었다."라고 『18세기 조선 인물지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 나온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려니와 어려운 일이라며 잘 그리려 하지 않았다.

초선(草禪)도 그의 호인데 연초(煙草), 남초(南草), 남령초(南靈草), 망우초(忘憂草)라고 했던 담배의 효능감을 선(禪)의 경지에 비유하다니 애연가답다.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지어준 호 명선(茗禪) 못지않은 작호(作號)인 것 같다. 구도(舊濤)라는 호도 있는데 '흘러간 옛 물결'은 흩어져 사라진 담배 연기를 비유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멋진 호를 쓰는 안목이 있어 "강세황의 서화첩에 허필의 평이 없으면 점잖은 선비가 갓을 쓰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세황의 존중을 받았다.

가난했지만 시간은 많았다. 36세 때인 1744년 금강산을 유람하는데 내금강, 외금강을 두루 구경하고 관동팔경을 일일이 답사해 1년이나 걸렸다. 곰방대는 당연히 물고 다녔을 터. 이 '총석도'는 관동팔경 중 으뜸인 강원도 통천 바닷가의 우뚝한 돌기둥 사선봉(四仙峰)과 이리저리 넘어져 있는 바위기둥들인 총석의 절경을 그린 것이다. '총석도'로 제목을 쓰고 함께 여행한 일행과 자신의 이름을 그림 위에 써놓았다. 통천의 총석은 일찍이 여기를 답사한 겸재 정선의 '신묘년 풍악도첩'(1711년) 중 '총석정'으로 하나의 틀이 만들어져 이후 김홍도, 이인문, 이재관 등 대부분 정선 식으로 이곳을 그렸다. 총석정에서 총석과 바다를 조망하는 구도이다.

그런데 허필은 배를 타고 동해로 나가 바다 쪽에서 총석을 바라보는 다른 시점을 택해 새로운 구도로 그렸다. 그래서 제목도 '총석정'이 아닌 '총석도'이다. 원래 총석은 총석정에서 보아도 좋지만 바다에서 배를 타고 돌아보는 것이 훨씬 실감 나 사선봉 선유는 금강산 여행의 일대 풍류로 손꼽혔다. 허필 일행이 탄 돛배가 제일 앞 쪽에 보인다. 총석을 화면 가득 그렸고 밀려오는 파도가 부딪쳐 일어나는 포말을 보글보글하게 그려 넣은 필치는 서투른 듯 졸(拙)한 맛이다.

강세황은 허필보다 23년을 더 살아 79세까지 장수하며 허필이 상상하지 못했을 큰 출세도 했다. 언젠가 망우(亡友) 허필의 금강산그림을 보게 되자 그의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하고 꼿꼿한 면이 있던 모습을 대하는 듯 해 눈물, 콧물이 마구 흐른다며 허필을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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