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서평]禪의 통쾌한 농담

갈대 한 잎에 의지해 강을 건너고 있는 달마.
갈대 한 잎에 의지해 강을 건너고 있는 달마.
김홍도 작
김홍도 작 '염불서승도'
김득신 작
김득신 작 '포대흠신도'

禪의 통쾌한 농담

김영욱 지음/김영사 펴냄

'천 자 낚싯줄 곧게 드리우니(千尺絲綸直下垂)/한 물결 일어나자 만 물결 따라 이는구나(一波纔動萬波隨)/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서 고기 물지 않으니(夜靜水寒魚不食)/빈 배 가득 달빛 싣고 돌아온다네(滿船空載月明歸)'

당나라 때 선승 선자덕성의 '발도가' 중 2수이다. 조용한 한밤 중 홀로 낚싯대를 드리운 뱃사공 머리 위로 환한 보름달이 강 위에 있는 작은 뱃전을 비추고 있는 풍광을 고스란히 묘사한 절창으로 손꼽힌다.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은 자신의 마음을 깨우치고 철저하게 밝히는 것을 궁극적인 깨달음으로 본다. 본래부터 갖춘 자연 그대로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씻은 듯 맑은 마음인 본지풍광(本地風光)을 찾는 마음공부가 선종의 핵심인 셈이다.

520년 경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전한 선종은 송대에 이르러 종교적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과 일상에서 깨달음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언어와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不立文字), 경전이 아닌 별도의 가르침으로 법으로 전하는(敎外別傳), 선종의 특성상 교리와 선종 대가들을 그림으로 그린 선종화는 회화의 또 다른 장르를 구축하기도 했다.

흔히 불법의 대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개념화한 텅 빈 상태인 '공'(空)을 근본적 진리로, 이분법의 분리나 분별을 깨뜨리고 직관으로 본질을 파악하는 지혜인 '반야'(般若)를 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선종의 대표적 인물이 달마로 이 책의 첫 장을 장식하는 조선 중기 화가 김명국의 '달마절로도강도'는 갈대 한 잎을 타고 강을 건너는 달마의 형상을 묘사하고 있다. 부릅뜬 눈과 담담한 얼굴표정이 중국 선종의 첫 조사로서 선(禪)의 종지를 가장 극명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중국 선종역사에서 최대 사건은 아마도 '혜가단비'(慧可斷臂)일 것이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신광(혜가의 속세명)은 그의 나이 40세에 면벽수행에 전념하고 있는 달마를 만났고, 그의 불법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왼팔을 잘라냈다. 일본의 셋슈 토요가 그린 '혜가단비도'는 몸을 던져 진리를 얻고자 한 선종 대가들의 강한 집념을 느낄 수 있다.

김득신의 '포대흠신도'는 낮잠에서 갓 깨어난 포대화상이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하는 그림으로 세상만사 걱정거리 없이 활짝 웃는 화상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진다. 어떠한 욕망에도 따르지 않고 일체의 집착을 끊어내면 모든 물아의 차별이 사라지는 모양이다. 차별이 사라지면 번뇌도 사라진다. 번뇌가 소멸하면 편한 잠이 따르면서 이른바 '삼매'의 경지에 이른다.

언제가 한 번쯤 본 듯한 김홍도의 '염불서승도'는 화면에 풀어낸 구름 같은 필선을 통해 노경에 이른 단원 필법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 노승의 말끔한 뒷모습은 만년에 이르러 세속에 연연하지 않는 초탈한 화가의 심회가 투영된 듯하다.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다보면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지극히 당연하여 농담을 주고받는 것 같은 선사들의 심오한 이야기를 수묵의 선과 농담(濃淡)으로 그려낸 한·중·일 선종화를 만나게 된다.

전체적인 책 구성은 마치 화두를 닮은 짧은 경구와 함께 선종화를 먼저 띄운 다음 그에 해당하는 선시 한 편을 소개하는 식을 모두 39점의 선종화와 선시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선시를 곁들여 흥미롭게 풀어낸 선 예술 인문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모두 3장으로 나눠 1장 '불립문자 교외별전' 편은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일화와 선을 깨닫는 계기를 그린 선화 이야기가 주류이고, 2장 '직지인심 견성성불'편은 여러 선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마음이 어딘가에 얽매이거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지에 대해 고심했던 옛 선사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3장 '도법자연 선지일상'편은 옛 선사들이 자연과 일상에서 선의 이치를 깨우쳤던 그림과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당대의 시인 백거이가 중국 절강성 회계산이 품고 있는 진망산에서 조과 도림선사와 만나 불법의 대의를 묻는 '도림백낙천문답도'는 유교와 불교의 만남이다. 백거이가 시중 한 명을 거느리고 조과 선사에게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예를 갖추는 장면은 정밀한 필치로 3인이 모습을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다.

책 마지막 부분엔 부록편을 두어 선종의 기본 개념과 선종화의 흐름을 정리하고 선종의 주요 계보도를 추가해 한눈에 전체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도록 했다. 304쪽, 1만7천800원

지은이 김영욱

옛 그림을 보며 차담을 나누기를 좋아하는 전통미술 연구자로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회화를 전공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대학에서 한국의 전통회화와 회화사를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 조선 시대에 그려진 고사화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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