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흉부외과 의사의 이직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수민이 누나!" 기차시간이 남아 동대구역에서 커피 한 잔을 하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올려다 보니 찬수 녀석이었다.

'찬수 녀석' 이라고 하기엔 이미 엄연한 의사 선생님이자 원장님이지만, 의대시절 술먹고 토하는 모습이며 시험기간 떡진 머릿결 냄새를 공유하던 내겐 김찬수 원장님은 여전히 찬수 녀석이다. 찬수는 의대 후배이자 동아리 후배였다. 싹싹하고 붙임성 많은데다 동아리 일도 잘해서 술도 많이 사주곤 했었다.

찬수는 공부도 잘해서 수석으로 졸업했다. 놀기도 잘놀고 성격도 좋은, 요즘 말로 하면 '사기 캐릭터'같은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인턴을 마치고 흉부외과를 지원했을 때는 모두가 놀랐었다. 성적 좋고 일 잘하고 성격도 좋은 남학생이면 자기가 원하는 거의 모든 과에 합격할 가능성이 높은데 소위 '정재영' '안피성' 같은 인기 과를 마다하고 수석졸업에 흉부외과라니.

지원 당시 흉부외과 교수님마저 너 왜 왔냐고 물으셨다는 소문도 있었다. 찬수는 흉부외과 전공의 과정 또한 누구보다 잘 해냈고, 전공의와 공보의를 마친 이후엔 경남 소도시에 자리잡았다는 얘기만 동문들을 통해 들었다.

그런 찬수였다. 졸업하고 동아리 모임에서 마지막으로 본 게 10년이 다 된 것 같다. 반갑게 인사하며 수 년만에 자리를 같이 했다. 찬수는 대구 본가에 들렀다가 서울 집에 다시 올라가는 길이라고 했다. 전공의를 끝내고 공보의 시절 머물렀던 진주가 마음에 들어 그곳에서 개업해서 지내다가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년전에 서울로 이사를 했다고. 지금은 찬수 형인 경수 선배가 있는 병원에서 같이 일한다고 했다. 경수 선배는 같은 대학 출신으로 졸업 후 인턴부터 바로 서울로 올라가 정형외과를 전공하고 서울에서 자리잡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찬수는 전공과가 흉부외과다 보니 당장 서울에서 개업이 힘들어 지금은 응급실 당직의를 한다고 했다. 말 끝에, "흉부외과 한다고 형한테 엄청 한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약간 후회가 되기도 해" 하는 거였다.

전공의 시절 찬수는 후배지만 정말 멋있었다. 같은 병동을 쓰기도 했지만 환자가 안좋아지면 번번이 뛰어와 주었고, 내 환자가 안좋아서 중환자실로 가게 되면 어차피 자기는 당직서니까 누나는 가서 눈 좀 붙이고 오라면서 내 콜을 받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전공의 시절 우리 과가 흉부외과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교수님께서 한번씩 회식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렇게 멋있었던, 없어서는 안 될 흉부외과 의사 김찬수였는데….

의사가 모자라 지방에서 일할 의사, 공공병원에서 일할 의사를 충원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한다. 정부와 언론, 의료계에서는 각각의 목소리를 내고, 의사들은 지난 7일에 이어 14일 파업을 실행했다. 정부는 만약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나는 정책을 다루는 사람도 아니고 감히 우리나라 의료계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도 없다. 하지만 이건 알겠다. 그렇게 성실하고 훌륭하고 소신있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흉부외과 의사 찬수가 응급실 당직의를 하게 된 이유가 뭔지, 그리고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찬수가 다시 진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을. 오늘의 열대야가 더욱 무덥게 느껴진다.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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