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자 칼럼 '국가균형발전-독일의 경우'가 나간 뒤 몇몇 지인들이 큰 관심을 표명하였다. 어디 그들뿐일까? 문제는 이 나라의 책임 있는 정책 입안자들과 정치인들이다. 일개 백면서생이 아무리 외쳐본들, 지금처럼 서울중심주의 사고가 횡행하는 한 대한민국의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백년하청이다. 교육만 백년지대계가 아니지 않은가?
독일 가면 무심코 아무 도시나 마을을 들러보라. 어디서나 잘 가꿔진 자연환경 속에서 높은 수준의 생활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필자는 방문교수로 남서부 칼스루에에 1년간 체재했었다. 인구 27만에 불과하지만, 국가기관인 헌법재판소, 각급 대학(독일 대학은 국립이며 학비가 무료이다. 독일은 국가가 교육을 책임진다는 철학이 확고하다)과 교육과학문화시설이 즐비한 도시다. 마침 집 근처에 웅장한 성과 '기가 막히게' 잘 가꾸어진 숲이 있어 모처럼 전원생활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필자는 지금껏 교육·연구차 독일 여러 지방을 방문하였는데, 매번 이상적인 균형발전상에 감탄하곤 했다. 남동부 도나우 강변의 '발할라' 기념관도 그중 하나다. 2018년 연구년을 맞아 뮌헨대학에 적을 둔 필자는 드디어 이 기념관을 탐방하였다. 아우토반을 타고 도착한 이 거대한 건축물은 육중한 배흘림 기둥들이 열주를 이룬, 파르테논신전 풍의 석조전이었다. 문화의 다원성과 다양성 면에서 로마보다 그리스를 높이 쳤던 독일 건축양식이었다.
1842년 바이에른 왕국 루드비히 1세 –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동화왕' 루드비히 II세의 조부 – 의 명으로 건립된 이 기념관에 어떤 인물을 넣을 것이냐의 논의과정에 독일인들의 역사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개관과 함께 괴테, 베토벤, 비스마르크 등 독일사의 대표적 인물 160명의 흰 대리석 흉상이 전시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완성자 루터는 1848년에, 마르크스가 '괴테 이후 최고의 독일 작가'로 꼽았던 시인 하이네는 2010년에 와서야 발할라에 초대받는 영광을 누린다. 필자는 특히 이 두 사람의 흉상을 직접 보고 싶었다. 또 하이네의 상에 길게 틈이 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독일인들은 왜 이 두 사람에게 그리 인색했을까.
과연 하이네의 흉상은 오른쪽 광대뼈 부분에서 가슴 중앙까지 길쭉하게 틈이 나 있었다. 틈이 벌어진 이 흉상에 독일인들의 착잡한 심경이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루터의 혁명적 종교관과 하이네의 진보적 문학관에 반감을 가진 보수 성향의 독일인은 적지 않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흉상에 틈을 내는 방식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지언정, 파묘하듯 아예 흉상을 치워버리자고 선동하는 언사는 들어보지 못했다. 더구나 발할라 안치 여부는 바이에른 주 정부의 결정사항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 문제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는다. 하이네 흉상 앞에 선 필자의 심경도 덩달아 착잡해졌다. 도나우 강의 잔물결 소리가 들려오는 화창한 봄날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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