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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기의 필름통] 아픈 기억과 상처를 치유하는 마법의 정원 '시크릿 가든'

영화 '시크릿가든' 스틸컷
영화 '시크릿가든' 스틸컷

고전 명작은 원형적 힘을 갖고 있다. 시대를 넘어 꾸준히 리메이크되는 이유다. 여기에 현대의 그래픽 기술이 더해져 화려한 판타지로 거듭나고 있다.

19일 개봉한 '시크릿 가든'(감독 마크 먼든)도 그런 코스를 밟고 있다. 프랜시스 버넷의 1910년 소설 '비밀의 화원'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다. '비밀의 화원'은 1993년 동명 영화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아름다운 치유 영화로 사랑받고 있다.

2차 대전 직후인 1947년, 인도에서 자란 영국 귀족 소녀 메리(딕시 에저릭스)는 어느 날 한 순간에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된다. 영국에 살고 있는 이모부 아치볼드(콜린 퍼스)의 손에 맡겨져 그의 저택으로 오게 된다. 폐허가 된 듯 어두운 고택. 가정부 메들록 부인(줄리 월터스)은 돌아다니지 말고 방에만 있으라고 한다.

모든 것이 낯선 메리는 저택 밖의 영지를 쏘다니기 시작한다. 숲속에서 떠돌이 개에 의해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문을 발견하게 되고, 그 문 너머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정원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작이 사랑받는 이유는 치유의 감동 때문이다. 비밀의 화원은 아치볼드가 부인과 사별한 뒤 버려둔 화원이다. 메리는 정원사 벤 할아버지와 친구 디콘의 도움을 받아 화원을 아름답게 가꾸고, 이를 계기로 침울했던 집이 행복을 찾는다는 것이 줄거리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절망감 때문에 버려진 화원이 한 소녀의 노력에 의해 치유의 정원이 된 것이다.

저택은 어둡고 음산하다. 밤마다 들리는 울음소리, 창백한 벽화. 이모부는 차갑고 외롭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워만 있는 사촌 콜린(이단 헤이허스트)을 만나게 된다. 언젠가 아버지 아치볼드처럼 등이 굽을 것이라 생각한 콜린은 집 밖을 나가기 무서워 갇혀 지낸다.

아버지는 아들을 잃을까 걱정해 집 안에 가두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에 의해 절망하고, 어머니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한 존재라는 상처로 살아간다. 메리 또한 엄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환영에 시달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이 원망에만 가득 찬 아픈 영혼들이 숨어 지내고 있는 저택, 그러나 그 너머에 이들의 영혼을 달래 줄 정원이 숨어 있다. 그 정원은 메리가 이모의 방에서 어머니와 이모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더욱 치유의 힘을 얻는다. 자매의 사랑과 우애는 그들의 기억과 달리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것이다.

원작은 화원을 가꾸는 과정이 있지만, 영화는 정원 자체에 마법 같은 치유의 힘이 있다는 설정을 갖는다. 판타지가 더해진 것이다. 그런 차별화는 그래픽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듯 하다.

아픈 기억과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찬 집과 달리 정원은 밝고 화려하다. 모네의 그림처럼 양귀비가 피어 있는 언덕, 색이 변하는 나무와 잎, 꽃이 피어나는 꽃길 등 상상을 그대로 눈앞에 아름답게 그려낸다. 메리와 콜린의 심리에 따라 화사한 봄이 쓸쓸한 가을이 되고, 또 잎들이 순식간에 시들어버리는 변화도 그래픽으로 묘사한다.

저마다의 상처와 기억을 숨기고 있던 등장인물들은 버려졌던 정원의 문이 열리면서 조금씩 치유받기 시작한다.

배경이 1947년으로 바뀌면서 전쟁의 상처가 남은 황량한 풍경을 더한다. 저택 입구에 쌓인 포탄 껍데기 등이 그렇다.

그러나 원작이 가진 힘이 과도한 판타지로 희석되는 아쉬움이 있다. 비밀의 화원은 버려진 화원이 자그마한 힘에 의해 가꿔지고, 이것이 치유의 힘으로 승화되는 힘이 있는데, 영화는 이를 생략하고 그 자체에 힘을 부여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정원이 마치 영지 밖 어딘가로 분리되면서 공간감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아내를 잃은 후 아들과도 멀어지고 괴팍해진 이모부 아치볼드를 콜린 퍼스가 맡았고 엄격한 메들록 부인은 '빌리 엘리어트'(2000)와 '와일드 로즈'(2018)로 잘 알려진 줄리 월터스가 연기했다.

원작자 프랜시스 버넷은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미국의 소설가다. 1886년 '소공자', 1888년 '소공녀' 등 아동의 따뜻한 감성을 담은 소설로 유명하다. '시크릿 가든'도 아동을 주인공으로 어른들의 상처까지 보듬는 영화다. 거기에 현대적 비주얼을 더했으니 젊은 관객들에게는 재해석된 고전의 향기일 수도 있겠다. 19일 개봉. 100분. 전체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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