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장마는 여느 해보다 길고 길었다. 장마가 끝날 무렵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졌다. 온 마을이 잠기고, 소가 물에 떠다니다 수십 리 떨어진 마을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폭우(暴雨)였다.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자마자 하늘은 그동안 내뿜었던 비를 다시 빨아들이기라도 하려는 듯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고 있다. 이제는 폭염(暴炎)이다. 한낮 최고기온이 38℃에 육박하면서 연일 폭염경보가 발령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수도권발 코로나19는 더욱 강력한 전파력을 장착하고 다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번 수도권 확산 바이러스는 GH형으로 이전에 발생했던 S형, V형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6배나 더 강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잠잠했던 코로나 감염자 증가가 가파른 속도를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코로나 폭풍(暴風)이라 할 만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대구시에서 하루에도 몇 통씩 안전 안내 문자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 진단검사, 폭염 주의, 거리두기 및 안전 수칙 지키기 등 수시로 울리는 핸드폰의 안내 문자가 이제는 무감각해지기까지 한다.
덥고 습한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려면 인내심을 요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려면 긴장감을 갖고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인내심과 배려가 요구된다. 다수의 사람들은 타인과 나를 위해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승차해 달라는 버스 운전기사의 말을 듣고 기사에게 폭언(暴言)을 퍼붓고 폭행(暴行)을 하는 사람들, 집회에서 코로나는 걸려도 죽지 않는다면서 방역 조치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웃듯이 무시하는 사람들, 교회 주변을 소독하러 온 방역 요원의 멱살을 잡고 폭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 질서는 상관 없다는 듯 자신의 뜻대로만 행동하는 일부의 사람들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재벌가의 폭언과 폭행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정치인들의 폭언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자신의 이념과 주장에 대해 비판하거나 반대하면 가차 없는 폭언이 오가며 인신공격까지 이어진다.
이중 주차한 자신의 차를 밀었다고 아파트 경비원에게 폭언과 협박을 퍼부었던 주민은 결국 경비원을 자살로 몰았다. 자신의 지시대로 하지 않는다고 선수를 폭언, 폭행했던 스포츠 감독과 선배 선수는 전도유망한 어린 선수를 자살로 몰았다. 폭언과 폭행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폭우, 폭염, 폭언, 폭행. 모두 폭(暴) 자가 사용된다. 한자 폭(暴) 자의 첫 번째 뜻은 '사납다'이다. 성질과 행동이 사나워 도리에 어긋나게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제 기후 재난이 일상화되어 가는 시점에서 폭우, 폭염은 어쩌다 한 번 발생하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이상기후가 아니라 일상적인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지속되는 위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인내심과 배려를 잃어가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사람들은 지쳐간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인내와 배려보다는 폭언과 폭행에 더 노출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회학에서 인간과 폭력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사회가 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의 산물이라고 본다. 폭력과 폭언, 폭행을 제어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것이 사회이다. 우리가 만든 사회와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환경 모두 폭(暴)에 지배당하지 않아야 지속 가능하다.
그러나 근래에는 자연도, 인간도 모두 폭(暴)에 지배당하고 있다. 폭(暴)이 만연한 사회, 광폭(廣暴) 사회이다. 자연은 폭우와 폭염을, 인간은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다. 광폭 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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