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판새’…극단의 시대

더불어민주당 이원욱(왼쪽)의원과 김근식 미래통합당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각각 윤석열 검찰총장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더불어민주당 이원욱(왼쪽)의원과 김근식 미래통합당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각각 윤석열 검찰총장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개가 주인을 무는 꼴" "대통령이 개인 줄 알고도 임명한 건가. 설마 대통령도 개라는 건가"라고 극언을 주고 받았다. 매일신문 DB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대한민국은 극단(極端)을 배제하고 상식·합리에 바탕을 둔 중용(中庸)을 추구한 덕분에 72년 역사를 유지해왔다. 공산주의를 맹신하는 북한의 남침을 물리쳤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군부 독재를 종식시켰다. 극좌나 극우,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으로 나라가 기울면 균형점(均衡點)을 찾아 맞췄다. 극단이 아닌 중용을 선택한 지도자들과 국민이 있었기에 산업화·민주화를 모두 성취(成就)한 나라가 됐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 다시 '극단의 시대'가 닥쳐왔다. 어떤 이는 대한민국이 1945~1948년 해방 정국으로 되돌아갔다고 개탄한다. 극좌·극우가 치열하게 싸운 이 시기엔 지도자들의 암살, 양민들의 희생이 줄줄이 일어났다.

극단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극언(極言)의 난무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라고 했다. 이에 김근식 미래통합당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검찰총장이 개라면, 대통령이 개인 줄 알고도 임명한 건가. 설마 대통령도 개라는 건가"라고 맞받았다. 대통령·검찰총장이 개에 비유되는 신세가 됐다.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이 의원의 극언은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광복절 집회 금지 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준 판사 등을 겨냥해 "국민들은 그들을 '판새'(판사 새X)라고 한다"고 했다.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부겸 전 의원은 "종교의 탈을 쓴 일부 극우 세력이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고 했다.

극언이 쏟아지는 이유는 극단에 함몰된 특정 집단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민주당 당대표,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이들이 '대깨문'을 염두에 두고 극언을 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SNS나 유튜브 등 정제되지 않은 주장들이 쏟아지는 공간이 극언을 촉발하는 측면도 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규정했다. 1·2차 세계대전, 파시즘, 유대인 대학살, 볼셰비키 혁명과 중국 문화대혁명으로 얼룩진 20세기에 딱 맞는 말이다. 극단의 시대에선 세상을 선과 악으로 재단하고, 모든 사람이 적과 아군으로 나눠 목숨 걸고 싸운다. 다시 극단의 시대를 맞은 이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릴 것인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