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환장(換腸)해야 합니다."
대구 사람으로 중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을 펼친 이상정 장군이 1925년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도 수백 리 떨어진 퉁허현의 한국인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주민에게 들은 충고이다. 먹을 것이 모자라는 곳이라 쌀밥은커녕 좁쌀(粟米)밥으로 허기를 때울 때니 속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었다. 식민 시절이니 나라의 안이든 밖이든 한국인의 배고픔은 같았다.
특히 그는 한국을 떠나기 전 이미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쌀밥과 보리밥 대신 좁쌀밥으로 배를 채우는 모습을 보고 울었던 바였다. 그런데 또다시 이역만리 남의 땅에서 '저 항우(項羽) 번쾌(樊噲) 같은 기골'의 학생들이 영양분도 적은 좁쌀밥을 먹고 견뎌야 하니 '부지중(不知中)에 눈이 흐려지고 코끝이 뜻끈뜻끈하여졌든 일'을 겪을 수밖에 없는 터라 어찌 가슴이 미어지지 않았을까
그는 남의 땅, 중국 북쪽 하얼빈에서부터 남쪽 상하이, 서쪽 윈난성 쿤밍까지 드넓은 대륙을 종횡(縱橫)하며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1947년 8월 귀국 때까지 현지에 적응하는 '환장'의 삶을 견뎠다. 고달픈 '환장'의 이력은, 귀국 2개월 만에 51세로 급서(急逝)한 뒤 1950년 대구 사람들이 그의 문집 '표박기'를 바탕으로 대구에서 펴낸 '중국유기'(中國遊記)로 남아 전한다.
이처럼 이상정 장군이 겪은 '환장'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환장'도 있다. 한자는 같지만 뜻은 부정적이다. 사전 풀이처럼 '마음과 내장이 바뀌어 미치겠다'는 뜻의 '환장'이다. 코로나19라는 중국 우한발 괴질이 나라를 다시 덮치면서 사람들이 곧잘 뱉어내는 말이 바로 '환장하겠네!'이다. 특히 대구는 더 그렇다. 지난 2월 18일부터 터진 코로나 전쟁에서 겨우 벗어났으려니 했는데 다시 번지니 말이다.
한때는 하루 최고 741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나올 만큼 대구는 모든 일상이 사라지고, 거리는 텅 비다시피 했다. 다행히 대구 사람은 특유의 인내심과 공동체 의식으로 개인적 희생도 기꺼이 감수했다. 방역 당국의 지침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철저한 준수에도 동참했다. 덕분에 끝이 보이지도 않던 국가적 재난의 최전선에서도 잘 버티며 방역 모범 사례로 나라 밖에서조차 조명을 받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나라 안에서는 선거 결과를 갖고 특정 정치세력과 연계한 보수적인 지역임을 내세워 대구를 폄훼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대구에 대한 봉쇄라는 언급도 서슴지 않았다. 대구를 마치 코로나 방역 실패에 따른 국민적 분노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샀지만 대구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외환(外患)에 내우(內憂)까지 꿋꿋이 견디고 버틴 덕분에 한동안 '0'의 행진을 했던 대구였다.
그런데 최근 도진 코로나 전파와 확산이 심상치 않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또다시 코로나 확진자 급증의 원인을 두고 '네 탓' 공방전이 한창이다. 과학적 원인 찾기보다 정치적 공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못된 버릇이다. 국민들로선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다. 특정 집단이나 집회에 따른 전파와 확산 관련 원인 규명은 마땅하지만 지금처럼 서로 탓하기가 과연 방역에 무슨 도움이 될까. 이러고도 방역 성공을 바라지 않을 수 없으니 환장할 만도 하다.
어느 때부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부 세력의 '네 탓' 공방을 보고 있노라면 '내 탓이오!'라며 세상을 안으려고 했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커 보인다. 물론 나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대구경북인이여, 부디 '환장'하지 말고 다시 한번 코로나 잘 이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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