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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뒷맛 개운치 않은 지진특별법 시행령

김대호 기자
김대호 기자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 논란이 '피해구제 비율 80%'로 일단락됐다. 뒷맛은 개운치 않지만 포항지진 그날 이후를 돌아보자.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31초, 경북 포항에서 촉발지진이 난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기자는 포항 남구 상대동 매일신문 동부본부빌딩 7층(총 8층) 사무실에서 공포를 경험했다. 건물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후로 포항에선 2019년 8월까지 규모 2.0 이상의 여진이 모두 100여 차례 발생한 것으로 기상청은 발표했다.

행정안전부의 2017 포항지진 백서에 따르면 포항촉발지진으로 100여 명이 부상당했고 1천6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주택·상가 등 3만3천여 곳과 공공시설 317곳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한국은행 포항본부는 2018년 5월 포항지진 피해를 자산 손실액 2천566억원, 간접 피해액 757억원 등 총 3천323억원으로 분석했다. 2018년 1월 정부가 최종 집계한 피해액 672억원의 5배에 가까운 규모다.

지진 원인을 밝히고 보니 2010년부터 시작된 포항 북구 흥해읍의 메가와트(㎿)급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사업 때문이었다. 다행히 포항은 지진 도시의 오명을 벗었다. 올해 4월 감사원 감사 결과에선 정부의 위법 부당한 귀책사유 20건이 확인되기도 했다. 포항은 하지만 차분하게 지진 피해에 대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해 지진특별법을 이끌어냈다.

'포항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포항지진특별법) 제1조와 2조에는 "포항지진이란 (중략)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발생한 지열발전사업으로 촉발된 지진을 말한다"고 돼 있다. 같은 법 14조는 "국가는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위한 지원금을 지급한다"라고 명시했다.

포항지진특별법의 조항만 읽고 나면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의 지진 피해구제 비율 제한을 두고 벌인 몇 개월의 논란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시행령의 피해 지원 한도 70%도 당초에는 60%부터 출발했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정부는 못 이기는 척하고 70%로 하고 계속 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포항이 가만히 있을 경우 그대로 밀어붙이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포항 정치권과 시민들 그리고 경북도, 포항시가 100% 요구를 하며 펄펄 뛰자 시행령 시행 열흘을 앞두고 정부는 80%안을 들이밀었다. 나머지는 경북도, 포항시가 부담하라는 것이었다.

더 이상의 반발은 실리적으로 이득(?) 될 게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완강하던 범시민지진대책위원회도, 포항시도 이를 수용했다. 포항 시민단체 관계자는 "돌아보면 정부의 행태는 어쩌면 흥정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포항을 가지고 논다는 표현은 좀 과할지 모르지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다.

포항촉발지진 1년 뒤인 2018년 10월 경북 영덕에 태풍 콩레이가 물폭탄을 퍼부었다. 며칠 뒤 매일신문에 잠정 피해액이 보도되자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언론 플레이 하느냐"며 영덕군을 질책했다.

행안부의 질책과 관련된 보도가 나가자 이번에는 발설자를 찾는다며 영덕군을 들들 볶았다. 재난 피해는 매뉴얼에 따라 조사하고 집계하고 검증한다. 언론 플레이 한다고 피해 액수가 늘지도 않는데 말이다.

지방정부를 대하는 중앙정부의 행태는 아직도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재난 상황에서조차 고압적이거나 시혜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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