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오감뿐 아니라 뇌까지 자극하는 경이로운 역작…영화 '테넷'

영화 '테넷' 스틸컷
영화 '테넷' 스틸컷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은 경이로운 영화다. 시간을 소재로 한 그 많은 영화들을 한 구덩이에 쓸어 넣어 버리고, 홀로 이들을 압도한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끝을 영화라는 메신저로 포장해 관객의 눈과 귀, 그리고 뇌까지 쥐락펴락한다.

'테넷'은 오락 액션영화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악당을 쳐부수는 주인공 이야기다. 이 정도면 '독수리 5형제'급이다. 어린이용 영웅물의 전형적인 플롯이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놀란은 여기에 물리학적 이론을 넣고, 스펙터클한 액션과 달콤한 로맨스까지 가미해 150분간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든다.

악당은 러시아 무기 밀매상 사토르(케네스 브레너). 그는 현재와 과거를 오갈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 이 힘으로 한 순간에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 이를 간파한 정보기관은 엘리트 요원인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닐(로버트 패틴슨)을 투입한다. 사토르에 대한 복수심이 가득한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을 이용해 그에게 접근한 주인공은 사토르가 시간을 거스르는 힘을 가진 것을 알게 된다.

'테넷'은 감독이 가장 야심찬 영화라고 자부한 영화다. 그는 우주물리학을 기반으로 한 '인터스텔라'(2014)와 정신분석학의 이해가 필요한 '인셉션'(2010)으로 관객에게 과학적 기초 지식을 요구했다. 이제 '테넷'은 심화과정이다.

'테넷'의 설정이 난해하다는 말이 많자 예고편을 통해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물론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고 어슴푸레 영화를 봐도 충분히 오락적 타격감이 있는 영화다.

그렇지만 영화를 본 후 끊임없이 일어나는 의문은 관객에게 고문이다. 친절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시간을 요리한 영화가 그 흔한 플래시백 설명 하나 없이 '알면 알고, 말면 말고'식이다. 감독의 짓궂은 '지적 유희'가 도를 넘는다.

영화를 보기 전 몇 가지 알고 가야 할 용어가 있다. 첫 번째는 '인버전'이란 말이다. 인버전은 사물의 엔트로피(물질이 변하는 경향성)를 반전시켜 그 사물만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기술이다.

총에 맞은 벽에서 총알이 거꾸로 총구에 들어오고, 전복된 자동차가 다시 온전한 상태로 되돌아온다. 총을 쏘면 총알이 나가고, 탄피가 튀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시간이 역행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이해다. 과거의 나와 마주치면 안 되고, 과거를 바꿔서도 안 된다는 이론이다. 과거를 바꾸면 미래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과거로 돌아가 할아버지를 살해하면 내가 사라지는 이율배반적인 명제다.

그러나 '테넷'은 과거의 나와 만나도 인식하지 못하면 괜찮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미래가 과거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터미네이터'처럼 한 시점에서 한 시점으로 이동해서 일어나는 일을 다뤘다. 그러나 '테넷'은 인버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이 역행 또는 순행되는 충돌을 관객에게 짜릿한 트릭으로 선사하는 영화다. 이효리처럼 앞뒤로 읽어도 같은 말이 되는 제목 'TENET'은 그래서 붙여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시작하는 시점부터 끝날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든다. 백팩의 작은 고리부터, 군인들이 청군과 홍군으로 나눠 벌이는 대형 군중신까지 모두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는 구석이 없다. 영화를 보면서도 리와인드시키고 싶은 갈망이 수차례 일어난다.

게다가 영화의 템포가 상당히 빠르다. '인셉션'이 산책이라면 '테넷'은 거의 질주 수준이다. 초반 오페라 하우스의 총격과 폭파장면에서는 빠른 액션 속에 단서들을 흘러가듯이 숨겨두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의 단점은 액션이 약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테넷'에서는 일취월장, 시원한 액션들이 강력한 음향과 함께 관객을 강타한다. 거기에 한스 짐머의 애제자 루드비히 고란손이 음악감독을 맡아 현악기의 고음과 둔탁한 퍼커션 저음이 혼합된 독특한 음악으로 관객의 긴장감을 높여준다.

놀란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CG)을 지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대형 세트장을 건설해 보잉 747 수송기를 실제 구입해서 충돌 장면을 찍기도 했다. 덴젤 워싱턴의 아들인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연기와 액션도 무게감을 더한다.

'테넷'은 렌즈 하나 값만 5억이 넘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전량 촬영했다.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영상과 음향 두 가지를 놓고 선택해야 된다면 음향 특수관을 추천한다.

'테넷'은 흔치 않는 영화다.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지적 유희와 상상력, 영화적 감각이 없다면 불가능한 영화다. 26일 개봉. 150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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