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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우의 새론새평]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제 대구경북이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한다. 대구경북의 꿈은 대한민국 근대사가 함께 꾸는 꿈이었다. 사진은 신라왕경 디지털 복원도. 매일신문 DB
이제 대구경북이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한다. 대구경북의 꿈은 대한민국 근대사가 함께 꾸는 꿈이었다. 사진은 신라왕경 디지털 복원도. 매일신문 DB
도태우 변호사
도태우 변호사

신라는 나라를 잃은 고조선 사람들이 내려와 척박한 산곡간에 헤어져 여섯 촌락을 이룬 데서 비롯되었다. 우두머리 중 하나인 소벌공이 알에서 난 박혁거세를 왕으로 살려냈으며, 박혁거세는 천 년을 지속하는 나라의 기틀을 세워 그에 보답했다.

척박한 도망자의 나라가 하나 더 있는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이다.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땅이었기에 바다를 건너 교역하다 유럽의 본류를 이루는 헬레니즘 문명의 기원을 이루었다. 척박한 변방이라면 지지 않을 나라가 또한 영국이다. 영원한 로마의 변두리에서 로마법을 뛰어넘는 보통법(Common law)을 길어 올려 근대 문명을 주도했다.

척박한 환경 탓일까? 신라 또한 널리 인재를 받아들이고 무역에 열심이었으며 나라 사람들(國人)이 왕을 추대하고 함께 의논하는 정치를 발전시켰다.

척박함을 극복하는 신라의 DNA는 천 년을 관통하여 19세기 후반 대구경북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되살아났다.

1880년대 조선의 점포 수는 270개인데 그중 3분의 2인 184개가 대구경북에 있었다. 근대 상인들이 다수 등장했던 대구는 자연스레 국채보상운동의 선두에 서게 된다. 일본으로 취업해 근대적 직장을 체험한 인구 비율도 대구경북이 타 지역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를 보였다.

그러기에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가 대구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 우연이라고만 하기 어렵다. 대구경북은 산업화의 모태가 될 자본, 인력, 사회적 기초가 어우러진 곳이었다.

이에 더하여 아테네와 영국 민족의 자유 본능과 유사한 신라의 질주 본능이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도래에 맞춰 대구경북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6·25와 낙동강 전선은 피의 희생을 통해 대구경북을 반공과 호국의 성지로 거듭나게 했다. 자유 반공 노선은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것이었고, 4·19의 전신인 2·28은 행동으로 이를 증거했다.

5·16 이후 1987년까지 대구경북은 눈부신 근대화와 산업화를 추진하는 고성능 엔진이었다. 동시에 제한된 수준에서나마 법치와 민주주의가 동반 성장했다. 이윽고 1987년 6·29선언을 통해 대구·경북은 '실질적 법치와 민주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이라는 역사적 대과제를 무사히 달성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어떠했던가. 대구경북은 미완의 헌법적 과제인 '자유 통일'이라는 국가의 비전을 잊고 지역 개발과 같은 작은 정치에 매몰되어 33년을 보내왔다. 근대사 100년간 선구적 비전을 제시해 오던 대구경북이 시야를 좁히고 안주하던 사이 국가의 방향성은 점차 위험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반공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건국과 호국,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반 성취가 정반대로 친일·독재·분단 세력 심지어 '토착 왜구'에 의한 수탈의 역사로 매도되면서 우리 사회는 어느 틈에 개인의 권리를 당 중앙이 좌지우지하는 중국식 전체주의로 변성되고 있다.

이제 대구경북이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한다. 코로나 블루의 진실은 비전 상실이다. 대구경북의 꿈은 대한민국 근대사가 함께 꾸는 꿈이었다.

적폐와 수구, 극우라는 모함과 누명을 뚫고 100년 근대사를 견인해 온 주역으로 떨쳐 일어나 공동체가 나아갈 길을 분명히 가리켜야 한다. 동아시아의 거대한 격랑 속에서 그 비전은 건국헌법부터 규정된 '자유 통일'일 수밖에 없다.

아테네가 없었다면 학문과 정치가 없고, 영국이 없었다면 보통 사람들의 법치와 민주주의가 없었을 것이다. 대구경북은, 나아가 대한민국은 어떤 역사적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 적어도 시대착오적인 중국몽을 넘어 광복절 노래 2절과 같이 '세계에 보람될 거룩한 빛'을 품는 방향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건국과 호국에 이어 근대화와 산업화를 달성하고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대구경북인이여, 마지막 '자유 통일'의 고지를 향해 힘차게 일어서자. 역사의 서광이 그대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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