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위세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면서 사회적 격리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유배형을 받으면 정치적, 사회적 격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배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학문을 완성시켜 나간 인물들이 있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과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대표적이다.
정약용은 1801년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경상도 장기로 유배를 갔다. 그런데 이해 9월 황사영이 조선 조정의 천주교 박해 상황을 중국 북경의 주교에게 보낸 이른바 '황사영 백서 사건'이 일어나면서 정약용은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다시 유배길에 오른 정약용은 나주까지 함께한 형 정약전과 헤어져 강진으로 갔고,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갔다. 정약용은 강진에 처음 유배를 와 동문 밖 주막에 머물렀다가, 1805년 겨울에는 보은산방으로 옮겼고, 1808년 봄 초당을 짓고 거처로 삼았다. 다산초당은 본격적인 연구의 산실이었다.
이때 정약용은 초당 근처의 백련사를 찾아 혜장, 초의와 같은 고승들과 교유하면서 차를 공부하기도 했다. 해남 윤씨 외가가 근처에 있는 강진에 귀양을 간 것은 큰 행운이었다.
외가에서 많은 책을 얻어서 연구에 참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배지인 만덕산의 얕은 야산에는 차가 많이 생산되어 '다산'(茶山)이라 했는데, 그의 호 '다산'의 유래이다.
정약용은 외부와 격리된 초당에 인공 폭포와 연못을 만들고 채소도 심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다. 초당의 바위 절벽에는 정석(丁石)이라는 두 자를 새겨 자신의 공간임을 확인해 두었다. 관료 생활 기간 중에 누릴 수 없었던 시간을 활용하여 학문 연구에 전념했다.
그리고 농민 생활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면서 현실을 개혁할 수 있는 방안들을 붓으로 정리해 나갔다. 황상 등 정약용을 따르던 18명의 제자들 도움도 컸다. 「전론」 「탕론」 「원목」(原牧) 등을 저술하여 개혁적인 토지 정책을 제시하였고, 1818년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의 명저를 담은 '여유당전서' 500여 책을 완성하였다. 정약용이 오늘날까지 실학을 완성한 최고의 학자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에는 유배라는 극한 환경에도 좌절하지 않는 열정과 시간 활용이 큰 몫을 했다.
김정희는 헌종 때인 1840년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 19세기에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대표적인 외척 세도 가문이었다. 이들의 정치적 대립 속에 윤상도의 옥사 사건이 일어났고, 경주 김씨인 김정희 가문은 풍양 조씨 편에 섰다가 김정희가 유배길에 오른 것이다.
김정희가 유배된 후 그와 인연이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끊었다. 지리적 격리 이외에 가까운 사람들과의 마음속 격리는 김정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을 것이다.
이 무렵 잊지 않고 김정희에게 책을 보내오는 제자가 있었다. 역관 이상적(李尙迪·1804~1865)이었다. 이상적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책을 좋아하는 스승을 위해 책을 보냈다.
이에 감동한 김정희는 의리를 지키는 제자를 위해 그림을 그려 이에 화답했다. 이것이 불후의 명작 「세한도」(歲寒圖)로 1844년 김정희가 59세 때 그린 역작이었다. 「세한도」에는 '날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논어』의 구절과 함께 창문 하나가 난 조그만 집, 고고한 소나무와 함께 잣나무 세 그루의 모습이 담겨 있다.
스승에게서 「세한도」를 전해 받은 이상적은 사행길에 중국 친구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었고, 이들은 이상적의 의리와 김정희의 불우한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글을 보태 주었다. 「세한도」는 올해 1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어, 그 가치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정약용과 김정희처럼 유배라는 격리의 기간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자신의 학문과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의 모습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이들 학자처럼 코로나19가 가져온 어쩔 수 없는 격리의 시간들을 자기 계발의 기회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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