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burnout) 시절,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배지였던 제주 대정읍 근처에 머문 적이 있다. 그곳은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당시 조선 최악의 유배지였다. 풍족한 양반 생활을 누리던 그에게 유배 생활은 풍토병과 눈병, 겨울에는 한풍이, 여름에는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하루하루가 괴로움과 고독 그 자체였다. 추사체는 9년 간의 유배생활에서 자기애의 울분을 누르고, 내면의 자기 절제로 만든 성찰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안동김씨 세력들에게 둘러싸인 '피포위 의식'의 강박관념으로 유배생활을 했다면, '추사체'와 '세한도'라는 독보적인 작품은 절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예는 문외한이지만 그의 글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가 겪은 고난과 역경이 '절제된 성찰'을 통해 기품 있게 표현된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남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어쩌면 인간 욕망의 법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자기 가치를 높이고 싶은 욕망에서 자기에 대한 사랑을 내부적으로만 집착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자기애를 철저히 부정하는 공리주의자들도 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자아 존중감을 조절할 능력을 상실하기 쉬우며,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다른 사람을 수단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자기애가 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영웅화하는 팬덤 현상도 나타난다, 양극단은 과잉의 꼭짓점에서 서로 반갑게 만난다. 그들에게는 사람의 가치가 보이지 않고, 물신화된 인간관계만 보인다. 자본 거울에 비친 위대한 자신의 모습에 이끌리어, 탐욕의 연못에 스스로 빠져 죽은 현대판 '나르시수스'와 같다. 기고만장과 우물쭈물한 전체주의자의 모습이다.
자본 앞에 인간은 나약하고 소심하다. 자본은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을 유연하게 강요한다. 특히 코로나 이후의 삶은 더 치열하다. 자연과 사람을 중시하지 않는 자업자득의 인간 재앙이다. 어느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 각자도생의 어두운 사회에서 '인간과 노동'이 배제되는 비대면의 대전환 시대가 빠르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만인의 욕망에 대한 만인의 인정'을 다 해 줄 수 없는 민감한 사회다. 불평등한 결핍이 상시적으로 발생 할 수밖에 없다. 그 민감한 결핍을 국가가 어떻게 완충적으로 만들어 주는 가에 따라 국가의 건강성이 달라진다. 나와 너 없는 우리는 존재하지 않으면, 우리 없는 나와 너는 더욱 더 존재할 수 없다. 이제 코로나로 혹한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수많은 우리의 이웃이 숨죽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하루하루 견디며 힘들게 숨 쉬고 있는 우리 이웃의 푸석한 얼굴을 애정 있게 바라보아야 한다. 함께 살아야 국가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함께 사는 것이 별것 있나요? 힘들 때 서로 도와주면 되지요.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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