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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대학 독서교육 유감 -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9월. 신학기가 시작되었는데도 대학 캠퍼스에는 적막감이 감돌고, 마음속에는 우울감이 맴돈다. 영혼을 잠식하는 알 수 없는 분노의 여름은 끝자락에 이르렀지만, 며칠째 불면의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이른바 '코로나 공포정치' 때문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코로나는 그래도 우리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있다. '성찰적 삶'(vita contemplativa)의 소환이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성찰적 삶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할까를 생각해본다. 필자는 그것을 독서에서 찾고 싶다. 지금이야말로 독서로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한국인의 독서량이 세계 최하위권(192개 국 중 166위: 2015년 UN 통계)이라는 등의 이야기는 일단 제쳐놓자. 문제는 처방인데, 답은 대학생들에게 있다. 책읽기가 재미있으면 된다. 그러면 사회에 나가서도 저절로 책을 찾게 된다. 어떻게 책읽기에 재미를 붙여줄 것인가?

2010년 필자는 교수회 대학교육 혁신위원으로 학생들이 재학 중 100책을 읽는 '백편 프로젝트'(HP)를 입안하였다. 뭐니 뭐니 해도 창의성(output)의 원천은 독서(input)라는 생각이었다. 이 경우 대전제는 첫째, 'HP'는 '(읽기 싫은) 고전 (억지로) 읽기'가 아니라 '(읽고 싶은) 양서(良書) (마음껏) 읽기'라는 것. 둘째, 과제 제출 지양이었다. 무엇을 읽든 학생들의 선택에 맡기되, 독후감 등 과제 부담을 없애야 지적 내공이 키워지고 지적 내공이 커져야 창의력이 발양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HP 액션플랜'은 (1)교수(명예교수 포함)·강사 분야별 '권장양서 1,000선 해제집' 마련, (2)'해제집'에서 96책(1년 24책) 골라 읽기, (3)그 책을 '실제로' 읽었는지 여부를 해당 서책 추천자가 S/U로 인증할 것으로 요약되었다.

이 'HP'는 2011년과 2018년 각각 대학본부 교학부총장실의 폭넓은 이해와 공감으로 주요 대학교육정책의 하나로 공론화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학내외 사정으로 그만 유야무야되어 버렸다. 정책 입안자로서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그 대안으로 필자의 소속 학과는 2012년부터 축소된 형태의 '독어독문학 독서인증제'를 학과 내규로 정하여 시행 중에 있다.

오래전에 한 신문 칼럼에서 읽었지만, 책읽기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그러나 밑 빠진 독 땅 속으로 스며든 물이 딴 데 어디 갈 리 없다. 장대한 황하의 기원이 그러하다. 하늘에서 곤륜산을 타고 흘러내린 차가운 물이 몇 천리 잠류하여 없어진 듯하지만, 마침내 황하 9천리의 대역사를 이룬다. 깊이 있는 생각, 독창적인 콘텐츠, 훌륭한 글은 이 몇 천리의 잠류처럼 깊고 넓은 독서에서 나오며, 그것이 21세기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다. '덤불이 우거져야 토째비가 나온다'는 우리 속담이나 '양의 질로의 전화'라는 헤겔의 변증법은 이 '밑 빠진 독에 책 읽기'와 맥이 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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