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잦은 걸 보니 곧 가을이 오려나 봅니다.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당신을 서둘러 떠나보낸 지 벌써 두 해가 다 되어 가네요. 37년을 같이 살았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대가족으로 살다 보니 우린 애정표현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그렇게 덤덤하게 살았었죠.
가끔 술 취해서 돌아와서는 침대에 쓰러지며 내게 "사랑한데이"라고
한 것이 전부였던 무뚝뚝한 경상도 남편 당신!
그런 당신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함께했던 마지막 6년을 "세 살배기 남편 그래도 사랑해!"라는 치매 간병기를 책으로 내었는데 그 책을 받고는 얼마나 서럽던지 엉엉 소리 내 울었습니다. 언제나 나만 보면 천사처럼 웃어주던 사랑했던 나의 세 살배기 남편, 이제 당신은 떠나고 대신 내 옆에 책 한 권만 덩그러니 남아있다니....
어느 날은 너무도 당신이 보고 싶어서 당신과 함께보며 즐거워했던 낡은 앨범을 들추어 보았습니다. 20년 전 당신의 사업 부도로 정말 힘든 세월을 보내며 당신을 원망도 많이 했었는데, 사진 속의 지난날들은 정말 불행했던 날보다 행복한 날들이 더 많았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해주었습니다.
연애시절 내가 대학원 입학해서 얼싸안고 기뻐했던 일,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았던 일, 아들들을 키우며 행복했던 순간들, 두 아들이 대학시험에 합격했던 일, 두 아들이 동시에 취업했던 일, 가족 18명이 어머님 팔순기념 현수막 들고 하이난 여행 갔던 일, 그리고 당신이 치매라는 높은 벽을 만나 힘들었지만, 그때부터 내가 당신의 보호자가 되어 가족과 당신의 친구들과 함께하며 소소하게 행복했던 날들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사진 속에 담겨 있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요양원 주말부부였을 때의 일인데 당신 기억나요? 당신을 집으로 모셔와 온 가족과 추석을 보내고 내가 운전해서 당신과 요양원 가는 도중에 내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당신을 집으로 모시고 와서 나랑 같이 살 거니까 잘 지내요" 그랬더니 갑자기 당신이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데 정말 나는 기적을 보는 것 같았고 내 귀를 의심했답니다.
그때 이미 당신은 말을 잊어버린 지 오래되어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는 상태였는데 그렇게도 똑똑하고 분명하게 인사를 하다니, 나는 울컥하며 감동을 받았었지요. 고맙다는 그 한마디 말에는 얼마나 많은 위로와 감사와 격려의 메시지가 담겨있었을지 나는 감히 짐작도 못 합니다. 나는 아직도 당신이 내게 마지막으로 한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당신은 왜 제 꿈속으로 자주 찾아와서 힘들게 하나요? 이제 이곳은 잊으시고 그곳 별나라에서 어두운 밤길 저와 아이들을 위해 훤히 밝혀주세요.
저는 요즘 두 웅이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고 당신, 창웅 씨를 생각합니다. 노부부는 아니었지만 꼭 60대의 우리이야기 같아서요. 작은아들은 이러는 나를 자꾸 핀잔을 줍니다. 매일 같은 거만 보고 듣는다고요. 그래도 새로운 웅이를 만나 행복하고 가슴 설렙니다. 마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요.
이제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치매로 힘들어하는 치매 환자 가족들과 일반인들에게도 우리의 치매 러브스토리를 들려주며 치매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편지 받으면 또 두 줄로 답해주실 거죠?
"일편단심 민들레야, 너를 제일 사랑한데이"라고
지금 내 곁에 없지만 그래도 당신을 사랑해!
'세 살배기 남편 그래도 사랑해!'의 배 윤 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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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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