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석재현의 사진, 삶을 그리다] 사진으로 만나는 인류세

이대성의 Climate Change and Our Future 시리즈 중에서
이대성의 Climate Change and Our Future 시리즈 중에서
석재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표
석재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표

이제 지구상에 안전한 곳은 없는 듯하다. 인간이 만류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코로나 19, 태풍, 이상기후, 물 부족까지 아무것도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오히려 이런 위기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악화할 것이라는 어두운 경고만이 가깝다. 학교와 일터로 가는 것, 여행이며 결혼도, 일상적이었던 모든 일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 '눈부시다'라는 칭송 아래 인류가 재촉해 온 발전이란 것이 우리의 발목을 단단히 낚아채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기획한 부산국제사진제 주제전은 지구촌을 장악한 자본주의와 무책임한 소비의 대가가 얼마나 큰 부메랑으로 다가오는지 보여주고자 하는 전시이다.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민낯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이번 전시는 그런 절실하고 안타까운 마음, 그리고 일종의 공적 책임감으로부터 시작됐다.

하셈 샤케리의 An Elegy for the Death of Hamun 시리즈 중에서
하셈 샤케리의 An Elegy for the Death of Hamun 시리즈 중에서

어떤 환경에서 인간만 쏙 빼내고 나면 다시 동물들이 모여들고 자연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인류가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를 너무 많이 변화시킨 나머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지닌 새로운 지질시대, 학자들은 현재의 시기를 '인류세'라 지칭한다. 인간이 자초한 환경 변화가 지질학적으로 한 세대를 구분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위태로운 지구를 담은 기록들, 9월 19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전시는 우리 인간들이 자연을 어떻게 향유해야 옳은 것인지, 다섯 명의 사진가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지구가 보내는 SOS 신호를 표현하고 있다.

장커춘의 Between Mountains and Waters 시리즈 중에서
장커춘의 Between Mountains and Waters 시리즈 중에서

벨기에 출신의 사진가 닉 하네스는 신기루처럼 기적을 이룬 두바이의 모습을 통해 과연 이 도시 속에는 진정성이란 것이 존재하며 언제까지 지속가능한 것인지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장커춘은 중국이 개혁과 개방을 지속한 지난 42년 동안 핑크빛 미래를 향한 급격한 공업화와 도시화로 치르고 있는 '환경의 희생'에 주목한다. 이란의 사진가 하셈 샤케리는 완전히 말라버린 하문 호수의 풍경을 통해 점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물 위기에 대한 경고를 보낸다.

닉 하네스의 Garden of Delight, Dubia 시리즈 중에서
닉 하네스의 Garden of Delight, Dubia 시리즈 중에서

파리에서 활동하는 한국 사진가 이대성은 급격한 사막화가 진행되는 몽골의 현실과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지는 인도 고라마라섬 주민들의 초상을 통해 비극적 현실을 표현한다. 인류세의 가장 확실한 특징 중 하나인 플라스틱을 작업의 주제로 삼은 영국의 사진가 맨디 바커는 전 세계의 바다에서 발견된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에 관한 작업으로 생태계를 위협하는 환경에 대한 심각한 경고를 보낸다.

맨디 바커의 What Lies Beneath 시리즈 중에서
맨디 바커의 What Lies Beneath 시리즈 중에서

바다로 향하는 부푼 돛단배처럼 더 나은 미래라는 미명 아래 우리는 모래성과 같은 현실을 외면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하지만 이 위기는 실낱 같은 기회이기도 하다. 지구 환경에 불어 닥친 길고 길었던 위험 신호를 이제는 좀 무겁고 날카롭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더 쾌적하고 더 편리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멈춘다면,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친다면, '인류세' 그 치명적이고 회생 불가능한 미래 역시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