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천년 육군 성지 상주] <하> 전투역사 깊은 호국충절 도시

역사 군사적 관점과 지리적 여건에서 육사 유치에 경쟁력
국난 위기 때마다 전세 역전시킨 격전지

한국전쟁 당시 육군 최초의 승리인 상주 화령장전투를 기념하는 전승행사가 매년 상주에서 열리고 있다. 자주포와 탱크 행렬이 지나가자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어 반기고 있다. 상주시 제공
한국전쟁 당시 육군 최초의 승리인 상주 화령장전투를 기념하는 전승행사가 매년 상주에서 열리고 있다. 자주포와 탱크 행렬이 지나가자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어 반기고 있다. 상주시 제공

경북 상주시는 육군사관학교가 이전할 경우 유치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상주가 역사·군사적 관점과 지리적 여건에서 최적지라는 판단이다.

선사시대 유적지가 남아 있는 상주는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시대 때는 신라 9주의 하나였다. 또 고려 때는 전국 8목 중 하나였고, 조선 초기 경상도 전체를 관할한 경상감영이 200년 간 자리했다.

특히 국토 중심에 위치해 경북은 물론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2시간 내 접근이 가능한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당진~상주~영덕고속도로, 상주~영천고속도로, 국도 3호선, 25호선 등이 동서남북을 연결하며 중부내륙고속철도 건설도 추진 중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면적이 세 번째로 넓은 상주는 국난 때마다 전세를 역전시킨 격전지가 육군 전사에 가장 많이 실려 있을 만큼 군사적 요충지, 호국의 고장이다. 5세기 경 신라 김유신 장군은 고구려와 신라, 백제의 국경지대였던 백화산 금돌산성에서 상주행군대총관 직을 수행하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구축했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가 한때 연합했던 신라를 침공하려 하자 김유신 장군은 지금의 모전천 일대에서 당나라군을 격멸하기도 했다.

상주는 고려와 조선 시기에도 호국의 중심이었다. 몽고 침입 때는 지역민과 승려들이 힘을 모아 몽고 기병 5천과 보병 4만5천명을 몰아냈다. 임진왜란 때는 상주성 탈환전투 승리 등 63전 63승의 신화를 낳은 정기룡 장군이 맹활약했다.

대한민국 육군의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는 정기룡 장군 초상화
대한민국 육군의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는 정기룡 장군 초상화

정기룡 장군이 상주를 중심으로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세운 63전 63승의 기록은 우리나라 육군사에 찬란히 빛난다. 그의 충의와 호국정신은 조선의 역사가 이어지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상주 시민들의 정기룡 장군에 대한 존경과 자긍심은 대단하다.

한국전쟁 당시 상주 화령장전투의 승리는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 수복과 연합군 반격의 발판을 제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화령장전투는 1950년 7월 육군이 상주 화북면 송계분교 일대에서 북한군 2개 연대를 매복 작전과 유인전술로 기습 공격해 한국군 단독으로 최초 승리한 전투다.

이 전투에서 아군 피해는 전사 4명, 부상 30명에 불과한 반면 북한군은 전사 606명, 포로 56명이었다. 한국군은 박격포 36문, 대전차포 6문, 기관총 53정, 소총 1천386정을 노획하기도 했다. 공로가 인정돼 당시 한국군 17연대 전 장병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고 모두 1계급씩 특진했다.

한국전쟁 육군 최초의 승리인 상주 화령장전투 대승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지난 2018년 개관했다. 상주시 제공
한국전쟁 육군 최초의 승리인 상주 화령장전투 대승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지난 2018년 개관했다. 상주시 제공

육군사관학교는 현재 서울 도심에 위치해 도시 개발을 저해하는 등 서울시민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정부가 태릉골프장에 공공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면서 육사 이전은 갈수록 현실화되고 있다.

강영석 상주시장은 "대한민국 육군의 정예 장교를 양성하는 육사가 호국충절의 도시 상주로 이전하기를 시민들과 열망하고 있다"며 "이전 부지 확보와 주변 군부대 및 교육·훈련시설과의 연계 등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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