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태풍 피해 망연자실…공무원·軍, 복구 구슬땀

도로 끊기고 농작물 침수되고…추석 앞둔 과수 낙과 피해에 시름

해병대 제1사단 장병들이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의 한 건물에서 태풍으로 망가진 구조물을 철거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해병대 제1사단 장병들이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의 한 건물에서 태풍으로 망가진 구조물을 철거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제9호, 10호 태풍이 할퀴고 간 경북 곳곳에서 피해 복구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무원, 봉사단체, 군 장병 등 도움의 손길은 침수, 강풍 피해 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동해안 시·군, 흙때 닦느라 구슬땀

8일 오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의 한 횟집.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흙때 가득 묻은 수족관을 닦아내고 있었다. 애초 간판이 달려 있던 자리는 전선 두 가닥만 남긴 채 휑하고, 가게 내부에도 탁자와 의자 등이 모두 치워진 채 각종 자재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난 7일 발생한 태풍 '하이선'은 오히려 피해가 적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먼저 발생한 태풍 '마이삭' 때문이다. 지난 3일 강풍과 폭우로 월파(파도가 강한 바람에 방파제를 넘어 들어오는 현상)로 바닷가 인근 건물이 초토화되면서 더 이상 망가질 게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은 파손된 도로 복구, 강풍에 떠밀려온 해안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아직 내부 청소도 마무리 못한 상태에서 또 태풍이 왔으니 뭐 크게 달라질 게 있겠느냐. 가뜩이나 힘든 시절인데 살아갈 힘이 떨어진다"며 한숨을 쉬었다.

포항시는 현재 필수인원을 제외한 모든 공무원을 읍·면·동 피해현장에 투입했다. 해병대 제1사단 등 군 병력 1천300여 명과 자원봉사자 300여 명이 복구작업을 돕고 있다.

태풍 '마이삭'으로 큰 피해를 본 울릉군도 본격적인 복구에 나섰다. 하지만 강한 파도에 일주도로 일부로 올라온 수십t 크기의 해상구조물 '테트라포드'(tetrapod) 제거가 난제다. 경북도 관계자는 "크레인으로 구조물을 옮기기가 어려워 콘크리트를 부숴 해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풍에 테트라포드가 육상으로 날려 왔다. 울릉군청 제공
강풍에 테트라포드가 육상으로 날려 왔다. 울릉군청 제공

경북 영천시 공무원과 봉사자들이 태풍 피해를 입은 사과농가에서 일손돕기를 하고 있다. 영천시 제공
경북 영천시 공무원과 봉사자들이 태풍 피해를 입은 사과농가에서 일손돕기를 하고 있다. 영천시 제공

같은 날 영천시 화북면 하송리 일대는 뿌리채 뽑힌 수백 그루의 사과나무와 낙과로 쑥대밭을 방불케 했다. 마을 내 5개 농가의 사과밭은 재배면적 30%에 달하는 3천여㎡가 태풍 피해를 입었다.

사과 농사를 짓는 한명동(66) 씨는 "추석명절 출하를 앞둔 신품종(아리수) 사과나무 220여 주가 모두 쓰러져 그간의 노력이 공염불이 됐다"면서 "하루 빨리 쓰러진 사과나무를 세우고 썩어 들어가는 낙과를 처리해야 하는데 일손도 부족하고 농작물재해보험 피해조사를 위한 현장보존 문제도 걸려 있어 속만 타들어 간다"고 토로했다.

울진군에서는 현재까지 인명 실종 1명, 사유재산 23건, 공공시설 48건 등의 피해가 파악됐다. 모두 지난 3일 발생한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상처다. 지난 7일 내습한 태풍 '하이선' 피해는 아직 조사 중이다. 울진군은 9일까지 태풍 '하이선' 피해현황 조사를 완료하고 11일까지 응급복구를 완료할 계획이다.

청도군은 지난 태풍 '마이삭' 영향으로 운면·금천·매전면을 중심으로 벼 쓰러짐 20.3㏊의 피해가 발생했고, 배·대추 낙과 피해가 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태풍 '하이선' 침수피해 등은 아직 정밀조사가 진행 중이다.

8일 경북 예천군 은풍면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박경진 씨가 떨어진 사과를 가리키고 있다. 쓰러진 사과나무에는 지짓대를 세워놨다. 윤영민 기자
8일 경북 예천군 은풍면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박경진 씨가 떨어진 사과를 가리키고 있다. 쓰러진 사과나무에는 지짓대를 세워놨다. 윤영민 기자

◆북부권, 농작물 복구 안간힘

태풍 '하이선'이 지나간 다음날인 8일 오후 예천군의 한 사과농장. 사과나무 아래에 강풍으로 떨어진 사과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쓰러진 사과나무는 겨우 지지대에 기댄 상태였다.

농장주 박경진(75) 씨는 "태풍 '마이삭'으로 이미 많은 사과과 낙과했고 사과 꼭지도 많이 약해진 상태에서 태풍 '하이선'이 또 불어닥쳐 피해가 더 컸다"며 "10월 중순에 수확할 사과는 3분의 1도 못 건지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청송군도 마찬가지다. 떨어진 사과가 많은데다 나무에 달린 사과 역시 상처를 입어 상품가치가 매우 떨어진 상태다. 청송군은 8일 농가 복구작업을 위해 전 공무원을 투입했다. 공무원들은 8개 읍·면 중 가장 피해가 심한 19농가를 방문해 쓰러진 벼와 과일나무 등을 다시 세웠다. 이종서 청송군 농정과장은 "태풍 2개가 연이어 지역을 강타하면서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혔다"며 "긴급 복구·보수를 하고 병충해 방제 등을 유도하겠지만 농민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경북 의성군청 공무원들이 태풍으로 쓰러진 사과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의성군 제공
경북 의성군청 공무원들이 태풍으로 쓰러진 사과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의성군 제공

의성군에서는 사과와 배, 복숭아 등이 낙과하고 과수와 벼가 쓰러지는 등 수백 ha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영양군의 경우 도로 침수지역은 긴급복구를 완료했지만 주택피해 현장과 농경지 피해 현장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7일 내린 집중호우로 수비면 수하계곡 인근에 최고 212㎜의 비가 내려 집 2채가 반파되는 등 피해가 축적된 상태다.

영양군은 이르면 10일부터 민가와 농장물 등에 대한 피해복구를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선 행정당국과 민간단체 등이 시설 및 농작물 피해 현장으로 나가 긴급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고란리 인근 국도 35호선이 하천 범람으로 도로에 진흙이 쌓여 있다. 안동시 제공
경북 안동시 길안면 고란리 인근 국도 35호선이 하천 범람으로 도로에 진흙이 쌓여 있다. 안동시 제공

안동시에선 태풍으로 수목 전도, 도로 침수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시청 도로 복구 담당자들은 국도 35호선 길안면 고란리 입구의 도로 침수 현장에서 남은 진흙 등을 치워 복구를 마무리했다.

경북 봉화군 대한적십자 여성봉사회 회원들이 침수 주택을 찾아 집안까지 들어찬 토사를 씻어내고 있다. 봉화군 제공
경북 봉화군 대한적십자 여성봉사회 회원들이 침수 주택을 찾아 집안까지 들어찬 토사를 씻어내고 있다. 봉화군 제공
경북 봉화군 대한적십자 여성봉사회 회원들이 피해 과수원 농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화군 제공
경북 봉화군 대한적십자 여성봉사회 회원들이 피해 과수원 농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화군 제공

봉화군 대한적십자 여성봉사회 회원 10여 명은 태풍 '마이삭'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소천면 박모 씨의 집을 찾아 침수된 가구를 세척하고 집안까지 가득 찬 토사를 씻어내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영주시 공무원 100여 명도 봉현면 노좌리 박세훈 씨 농가를 찾아 태풍으로 쓰러진 사과나무 세우기, 낙과 사과 줍기 작업 등 피해농가 지원에 나섰다.

군위군과 경북도 등이 팔공산터널 출구 도로(칠곡군에서 군위 부계면 방향, 지방도 79호선)에 쏟아진 토사와 자갈을 치우고 있다. 군위군 제공
군위군과 경북도 등이 팔공산터널 출구 도로(칠곡군에서 군위 부계면 방향, 지방도 79호선)에 쏟아진 토사와 자갈을 치우고 있다. 군위군 제공

◆중부권은 시설 복구에 총력

군위군은 7일 오전 9시 팔공산터널 출구 도로(칠곡군에서 군위 부계면 방향, 지방도 79호선)에 토사 및 자갈이 유출되자 즉각 도로를 통제하고 복구에 나섰다. 현장에는 굴착기 1대와 덤프트럭 2대가 투입됐으며, 인력은 군위군과 경북도 담당 공무원 등 총 18명이 동원됐다. 이후 이날 오후 2시 30분쯤 1차 통행이 재개됐고 오후 6시에는 통행이 전면 재개됐다.

칠곡군은 7일 동명면 군도 31호선에 토사가 유출되자 이날 오전부터 8일 오후 4시까지 복구작업을 벌였다. 투입된 인원만 50여 명에 달하고 장비는 굴착기 등 4대가 동원됐다.

특히 가산면 금화-용수 간 도로는 유실 상태가 심해 8일 오후까지 통행이 완전 통제됐다. 이 도로는 복구에만 2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칠곡군 관계자는 예상했다. 가산면 농로 3곳과 임도 2곳은 이날 오후 복구가 완료됐다. 가산산성 야영장 인근 옛 국지도(79호선)와 군도(6호선) 지천면 청구공원 도로는 앞서 7일 응급 복구가 완료됐다.

성주군은 민·관이 태풍 피해 복구에 적극 나서 소규모 피해현장은 대부분 복구를 마쳤다. 태풍이 들이닥친 당일 금수면 광산리 농로와 배수로 토사 유출 현장의 응급복구를 했고, 성주읍 예산삼거리 교통신호기와 수륜면 남은리 이동화장실 수리를 끝냈다. 하지만 벽진면 용암리 석축 및 블록 유실 피해와 성주읍 농수로 세굴 피해 등은 여전히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다. 성주시장 주차장 배전반 고장, 시장 건물 옥상 및 아케이드 누수 등은 수리 계획만 세운 상태라 상인들의 불편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강풍에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지붕의 대형 샌드위치 패널 23장이 날아가는 피해를 입은 초전농협은 9일 완료를 목표로 복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초전농협 관계자는 "해당 건물은 남북으로 2m 정도의 처마가 설치돼 있는데, 강풍이 북쪽 처마를 들어 올리면서 지붕 패널이 날아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7일 하루 참외 선별작업을 다른 곳에서 했지만 지금은 선별과 공판이 APC에서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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