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우리 곁에 온 지 7개월이 지나면서 일상은 통째로 바뀌었다. 당연했던 것들이 이젠 당연하지 않게 바뀌고 있다. 우리 일상의 변화는 물론이고, 생활 문화에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급기야 아름다운 우리 전통인 세시풍습까지 바꿔 놓을 태세다. 아마도 올해 추석은 몸의 귀향을 포기하는 대신 마음의 귀향이 늘어날 것 같다. 고향을 찾아도 형제자매들끼리 시차를 두고, 고향을 방문하자는 묘안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조차 '온라인 성묘'를 권고하고, 벌초도 대행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당부할 정도다.
명절은 모이는 날이고, 나누는 날이다. 멀리 있는 가족과 친척들이 모이고, 함께 명절 음식을 나누고, 마음에 품었던 사랑과 그리움을 나누는 날이다. 그런데 고향을 찾을 수도 없고, 부모님과 친척은 물론이고, 보고 싶은 얼굴도 볼 수 없는 '언컨택트(uncontact) 한가위'를 맞다니 당황스럽다. 이 모든 원인이 코로나19에 있단 말인가.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고, 치료제가 개발되면 그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세계는 코로나19 훨씬 이전부터 언컨택트 사회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배달 문화가 그것을 잘 대변해 준다. 스마트폰에 배달 앱 하나만 깔면 말하지 않고도, 음식을 배달하고 장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당일 배송, 새벽 배송까지 이뤄지지만 배달원과 대면할 필요조차 없다. 사람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타인과 말을 직접 주고받고, 접촉하지 않아도 생활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한국은 90%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정도로 초연결사회다. 요즘은 세계화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전 세계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 그런데 소통의 방식이 언컨택트다.
언컨택트는 시대의 흐름이다. 소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만나지 않고도 소통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언컨택트는 타인과의 대면을 줄일 수 있다면 줄이고, 접촉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지, 소통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가까이 있어야 깊은 소통이 이뤄지는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숨겨진 차원』에서 사람 간의 거리에 따라 친소 관계를 나눴다. 가족과 연인만 들어올 수 있는 '친밀한 거리'는 0~45㎝이고, 친구나 가까운 지인이 들어올 수 있는 '개인적 거리'는 46~120㎝라고 했다. 공적인 관계인 '사회적 거리'는 120~360㎝이고, 공연이나 강의에서 만나는 '공적 거리'는 3.6m 이상이라고 했다.
언컨택트의 시대에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딥컨택트(deep contact), 만나지 않고도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추석, 우리는 귀향할 수 없고, 차례를 지낼 수 없다 해도 부모님과 친지, 이웃들과 더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이 수가라는 동네에 도착했을 때 사마리아 여인이 질문했다. 우리가 어디에서 하나님을 예배(섬겨)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요 4: 20~23) 예수님의 말씀이 언컨택트 시대에 딥컨택트로 살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참된 섬김과 교제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정성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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