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예술, 나의 삶]현대미술가 서옥순

현대미술가 서옥순 작가가 그녀의 아틀리에에서 캔버스를 천 삼아 바느질로 인물을 드로잉하고 있다.
현대미술가 서옥순 작가가 그녀의 아틀리에에서 캔버스를 천 삼아 바느질로 인물을 드로잉하고 있다.

서옥순 작
서옥순 작

"아티스트로서 삶과 예술이 어찌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나 자신도 나의 부모가 낳아준 위대한 작품이 아닌가요. 나의 삶을 연극이나 영화처럼 대자적인 무대에 올려놓고 본다면 나의 존재 또한 시간 속에 있는 하나의 예술품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적 행위와 생활 속 삶을 동일선상에 놓고 바라보는 작가는 스스로를 '현대미술가'로 불러주길 원했다. 평면미술에서부터 설치, 입체, 부조 등 다양한 작업을 섭렵한 작가는 어느 한 장르에 구속되기보다 작가의 아이디어와 가장 부합하는 재료를 이용해 최적의 조형언어를 드러냈을 때 그것이 '구상이냐, 추상이냐' 등의 분별은 보는 이의 몫으로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옛 70번 버스가 다녔던 한적한 도로가에 자리한 건물 2층의 소담한 화실(132㎡)은 '현대미술가' 서옥순(56)이 4년째 작업하고 있는 공간이다.

계명대 미술대학 서양화과(85학번)를 나온 서옥순은 대학시절엔 주로 유화를 그렸으나 미대 동아리 '세나클'에 들면서 평면작업뿐 아니라 아방가르드적인 실험 작품에 관심을 가졌고, 이때부터 미술에 대한 인식과 시선을 넓게 가지게 됐다.

대학 졸업 후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독일 브라운슈바익 국립조형예술대학에 유학을 하게 되면서 작가는 이제까지의 작업 경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업을 향한 터닝 포인트를 접하게 된다. 사실 이전까지 서옥순은 캔버스에 얇은 한지를 입혀 유화를 그렸었다.

"한지가 주는 따뜻한 느낌이 좋았어요. 색한지에 락스를 칠하면 색이 빠지는 데 그 위에 다시 역발상으로 색을 칠하거나 오려 부치는 작업을 통해 심상 속 풍경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데 열중했었어요."

유학시절 이런 작업을 하고 있던 중 서옥순은 지도교수로부터 화풍의 변화를 가져올 조언을 듣게 된다.

"서양의 화풍을 답습하는 것보다 자네는 한국인이니 한국적 문화 속에서 자네다운 작업을 찾아보는 것이 어떠냐"라고.

그녀의 지도교수는 추상회화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까지 끌고 감으로써 순수 추상화가 발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터라 서옥순에게 예술이 향유로서가 아닌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단초를 제공하게 됐던 것이다.

평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작가는 지도교수의 말을 듣고 작품 경향 전반을 돌이켜보면서 생각에 몰두하던 중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그 종착지는 자신의 태어났던 곳인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의 '깡촌' 시골마을이었다.

서옥순은 초교시절 방학 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던 이 깡촌 마을을 찾았다. 당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로 밤을 밝히던 시절, 할머니 집 대청마루에 앉아 달이 휘영청 뜬 지리산 자락을 보노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풍경이 아름다웠다고 회고했다.

이곳에서 그녀는 할머니와 함께 반짇고리를 놓고 바느질을 하며 보냈고, 할머니는 손녀에게 예쁜 색동복주머니를 만들어 주시곤 했다. 독일 지도교수가 그녀에게 어릴 적 추억을 소환시켜 준 것을 기회로 서옥순은 유화에서 손을 뗐고 새로운 회화의 세계로 빠져들게 됐다.

이제 서옥순의 작업은 물감 대신에 실, 붓 대신에 바늘, 캔버스 대신에 천을 갖고 미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녀 작업에서 '존재'(Existenz) 연작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첫 시제품이 작은 저고리 모양의 종이에 독일 국기의 삼색인 검정, 빨강, 노랑을 면분할로 처리한 것으로 강의 시간에 교수와 동료학생들에게 보이자 모두들 "이게 뭐지"하며 관심을 보였고 이에 고무된 작가는 천에다가 이 작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유학 중 잠시 귀국했던 작가는 시제품을 청사진 삼아 공단을 이용해 가로 6m 세로 3.5m짜리 한복 저고리에다 독일 국기의 삼색을 면분할로 처리한 작품을 제작, 독일에서 수업시간에 선을 보였다. 이때가 1998년이었다.

"독일 교수랑 학생들이 그 작업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고 지도교수가 제게 '이 한복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기에 '나의 얼굴을 문양으로 그려넣고 싶다'고 답을 했었죠."

작가는 얼굴문양도 그냥 문양이 아니라 할머니와의 추억을 바탕삼아 수(繡)로서 문양을 넣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 아기도 잠자고 주위가 고요한 밤, 저고리에 수를 놓고 있는 데 문득 벽에 걸어둔 하얀 캔버스가 눈에 들어왔고, 찰나에 그 캔버스에 검은 실로 작가의 얼굴을 수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수놓기는 정적이며 몰입감이 상당히 필요한 작업이다.

내친김에 하얀 캔버스에 검은 실로 작가의 자화상을 수놓기 시작해 마지막으로 눈 부위를 마무리하면서 바늘을 캔버스 밑에서 위로 살짝 찔러 올리는 순간, 선승이 화두를 참구하다가 단박 깨침에 이른 것처럼, 작가는 소름 끼치는 환희를 경험했다고 한다. 늘 그렇듯 수를 마무리 하려면 바늘 끝 자투리 실을 끊어야 하는데 작가는 이 순간 환희로 인해 차마 그 실을 끊지 못한 채 길게 늘어뜨리는 데 그게 꼭 눈물을 흘리는 형상을 띄게 됐던 것이다.

이로 인해 서옥순은 '눈물을 수놓은 작가' 또는 '실로 드로잉하는 작가'라는 닉네임을 얻게 됐고 자신의 존재성에 대한 물음을 화두로 작업을 계속하게 됐다. 2005년 동제미술관에서의 국내 첫 개인전과 2006년 독일 쉐닝엔 쿤스트 페어아인에서의 해외 첫 개인전은 실과 천 조각을 이용한 회화의 또 다른 조형언어를 본격적으로 선보이게 된 전시였다.

최근 서옥순은 5cm넓이의 천을 길게 잘라 똬리처럼 둥글게 말아 캔버스를 장식하고 마지막엔 길게 가는 실을 늘어뜨리는 '눈물' 연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서 한 줄기 길게 늘어뜨린 검은 실은 눈물이며 슬픔이자 고통인 셈이다.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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