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손진은(1960~ ) 作
노당리 뒷산
홍수 넘쳐 물살 거친 계곡 밑으로
쪼그만 돌들
물길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노당리의 산과 들
지난 수십 년의 계절과 햇빛 바람 다져넣고도
동으로 혹은 서으로 머릴 누이고
낯익은 백양나무 강아지풀 개구리 울음 뒤로 한 채
이 마을 사람들 대처로 대처로 나가듯
물살의 힘 어쩌지 못하고 떠내려간다.
(중략)
만났다가 헤어지고
그냥 안주하기도 하는 돌들의 행려(行旅)여.
몇몇 친숙한 식구가 떠난 뒷산 계곡의 남은 돌들
더 깊은 시름에 잠기고
세찬 여름비의 며칠이 지나고 햇빛 쨍쨍한 날
가슴에 이끼날개 달고
밤 속으로 은빛 공간 열며
별이 되는 꿈을 꾸는
조약돌 몇이 얼핏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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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엔 유난히 비가 많습니다. 엊그젠 태풍마저 들이닥쳤지요. 도랑가에 있는 논둑 일부가 무너져서 낑낑 보수를 해야 했습니다. 돌을 골라 무너진 논둑을 쌓는 일,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인데 저는 그 일을 제법 잘 합니다.
개울에 발을 담그고 논둑을 쌓다 보면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집니다. 노동을 하면서 하는 생각은 다 건전하지요. 귀소(歸巢)여. 본능(本能)이여. 머잖아 추석이 다가옵니다. '이 마을 사람들 대처로 대처로 나가듯. 물살의 힘 어쩌지 못하고 떠내려간 돌들의 행려'여. 물살(시대)에 떠밀려 저 큰 강(도시)으로 떠나간 돌(사람)들은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할까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귀향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몸엔 여전히 농업의 유전자가 흐르니 고향을 잊지는 맙시다.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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