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독]'달성·범어·죽전' 네거리마다 '초고층 아파트'…왜?

[하] 대구 중심상업지역 주상복합 찬반 팽팽
땅값만큼 고분양가로 고수익…높은 용적률도 한몫
31곳 건설중, 중구는 12개 단지나 '초고층'

대구시가 상업지역 주거복합 건축물 주거용 용적률을 400%로 제한하는 도시계획 조례 개정에 나서자 11일 오후 수성구 범어3동 한 재개발 주민협의회가 이번 달 말까지 사업 승인 신청을 마무리 하자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상업지역의 고층고밀 주거지화를 방지하기 위한 이번 개정안은 시의회 심의를 거쳐 다음 달 말 공포 시행될 예정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시가 상업지역 주거복합 건축물 주거용 용적률을 400%로 제한하는 도시계획 조례 개정에 나서자 11일 오후 수성구 범어3동 한 재개발 주민협의회가 이번 달 말까지 사업 승인 신청을 마무리 하자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상업지역의 고층고밀 주거지화를 방지하기 위한 이번 개정안은 시의회 심의를 거쳐 다음 달 말 공포 시행될 예정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 중구 달성네거리 인근 태평로 일대. 달성공원 인근에는 달성파크푸르지오힐스테이트,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는 힐스테이트도원센트럴 아파트 단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대구 중구 달성네거리 인근 태평로 일대. 달성공원 인근에는 달성파크푸르지오힐스테이트,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는 힐스테이트도원센트럴 아파트 단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대구 도심 스카이라인을 '초고층 아파트'가 점령하고 있다.

상업시설과 사무실로 북적여야 할 핵심 도심지에까지 주상복합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대단지 주거시설이 자리잡으면서다. 오랜 불경기로 사무용 빌딩 수요가 없는 탓에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목소리와 대구 도심이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달성네거리 인근 주상복합 8곳 '공사 중'

7일 오후 대구 중구 달성공원에서 경부선 철로 방향으로 5분 정도 걷자 나타난 달성네거리 인근은 거대한 공사장을 방불케 했다.

달성네거리 서남편에는 달성파크푸르지오힐스테이트 아파트 건설을 위한 철거작업이 이뤄지고 있었고, 동남편 힐스테이트도원센트럴 부지도 기초공사에 들어간 상태였다. 태평로 맞은편에는 대구역경남센트로팰리스, 대구예술발전소 건너편에는 대구역제일풍경채위너스카이 아파트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철길 건너 북편에도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 세 곳이 공사를 시작했으며, 태평로를 따라 북성로에도 대단지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곳을 지나던 한 주민은 "어느 방향으로 가도 아파트 공사장이 있고, 도로마다 공사 차량들로 북새통"이라고 했다.

9월 현재 태평로와 경부선 철길을 중심으로 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 단지만 모두 8곳. '중심상업지역'에 위치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중심상업지역은 '도심·부도심의 상업기능 및 업무기능을 위해 필요한 지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사가 모두 끝나면 이곳은 수천 가구가 거주하는 사실상의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한다. 수만 명의 인구가 유입되면서 도심 생태계도 완전히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주거지역으로 바뀌어 가는 도심을 바라보는 주민과 인근 상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 주민들은 '인구 유입으로 상권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주민 A(57) 씨는 "30~40여년 전 대구역이 있어서 상가도 많고 오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동대구역이 생긴 뒤부터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해 사실상 슬럼화됐던 곳"이라며 "대구역 자이 아파트가 생기면서 공원도 생기고, 동네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다른 아파트까지 완성되면 여건이 크게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 것'이라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북성로에서 횟집을 하는 이종은(48) 씨는 "손님들이 이용하던 주차장이 아파트 단지에 편입되면서 주차난이 극심해졌다. 상업시설이나 사무실이 들어와야 동반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안타깝다"며 "이미 들어선 인근 아파트도 기존 상권에 긍정적 영향은 거의 없고, 주차난과 교통정체·임대료 상승만 부추겼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신축 공동주택 5곳 중 1곳은 '중심상업지역'

중심상업지역에 주상복합 아파트·오피스텔 등이 건설되는 현상은 대구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취재진이 지난 7월 기준 대구시내 주택건설사업 추진 현황을 분석한 결과, 현재 사업 승인을 받은 151곳의 아파트 건설현장 가운데 20.5%에 이르는 31곳이 중심상업지역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심지 특성상 중심상업지역이 가장 많은 중구에서만 무려 12곳의 아파트 단지가 중심상업지역에 터를 잡았고 ▷동구 5곳 ▷북구 6곳 ▷수성구 2곳 ▷달서구 6곳 등이 중심상업지역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기준 대구시내 용도지역 883.5㎢ 중 중심상업지역은 6.9㎢(0.8%)였다. 전체의 0.8%에 불과한 부지에 아파트 건설현장의 20.5%가 집중된 셈이다.

대구시는 지난 2003년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 순수 공동주택 건축이 불가능한 상업지역에 주상복합 건물을 지을 경우 주거용도 시설 비율에 따라 용적률을 다르게 적용하는 '용도용적제'를 도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심상업지역에서는 주거시설의 연면적비에 따라 용적률을 600~1천300%까지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후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높은 용적률을 이용한 고층·고밀도 주상복합시설이 난립하게 됐다. 특히 사실상 주거용도 시설에 가까운 오피스텔을 비주거용으로 분류, 주거시설 비율을 낮춰 높은 용적률을 확보하는 방식이 '대세'가 됐다. 대구의 주택보급률이 104%를 기록하고 있는 현재도 이런 흐름에는 변함이 없다.

◆"분양가 높아도 수요 충분"

중심상업지역에 주상복합 등 주거용도 건축물이 몰리는 이유는 ▷정부 부동산 정책의 풍선효과에 따른 지역 주택 가격 급등 ▷실거주·투자 목적의 주택 수요 증가 ▷시민들의 역세권 주거지 선호 ▷시행사의 단기간 고수익 주택건설 선호 ▷중심상업지역 내 상업·업무공간 인기 감소 등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대구 건설업계에 따르면 2000년 초 참여정부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투기억제·공급확대 등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실시하자 수도권 시행사·건설사들이 대구를 비롯한 국내 대도시로 눈길을 돌렸다. 프리미엄 주택 공급을 지방에까지 확대하거나, 높은 땅값을 치러가며 단시간 내 택지를 확보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대구에선 일반상업지역에 들어선 수성구 황금동 대우 트럼프월드(2003년 분양)가 시초로 꼽힌다. 뒤이어 중심상업지역인 범어네거리에 두산위브더제니스(2006년 분양), 죽전네거리에 감삼동 신세계빌리브(2019년 분양), 달성네거리에 힐스테이트대구역오페라아파트(2020년 분양) 등이 잇따라 자리잡았다.

시행사들은 주거지역에 택지를 확보하기 보다 중심상업지역 등지에서 빈터나 노후 건물을 기존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재빨리 사들였다. LH 추첨 등에 뛰어들 필요가 없고 재건축·재개발처럼 조합 구성부터 사업 시행, 분양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지 않는 장점을 활용했다. 관련법에 따라 중심상업지역에서 최대 1천300%까지 제공되는 용적률 덕분에 비교적 작은 대지로도 높은 건물, 넓은 가구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 승용차·대중교통 접근성과 풍부한 상권·의료시설 등 인프라가 장점으로 작용하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초 역세권' 마케팅도 수요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택지 공동주택에 비해 높은 분양가에도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한 이들을 중심으로 수요가 급증했다.

중심상업지역의 땅값이 오르자 기존 상인들은 임차료를 감당하기 힘들었고,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 소셜커머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이 활성화되면서 상가·음식점이 더 이상 요충지에 있을 필요도 없어졌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병원, 전자제품 전문점, 프랜차이즈 카페 등 고부가가치 업종을 제외하고는 기존 상인들이 중심상업지역에서 탈출하면서 주상복합 주택이 들어설 여지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또 다른 시행사 관계자는 "중심상업지역은 땅값이 비싼 만큼 분양가를 높여 부를 수 있다. 대구에선 '한시라도 일찍 집을 사야 시세 차익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인식이 높아 초기 분양가가 높아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며 "2019년 정부가 수성구를 투기과열지구에 지정한 후 풍선효과 탓인지 중구와 남구, 달서구 등으로 그 사업지가 확장되는 추세다. 직장인, 젊은 부부와 고소득 중장년 중심으로 수요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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