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과외지'란 수박 겉핥기란 말로, 수박속의 오묘한 맛을 모른다는 뜻이다. 속(內)은 모르면서 껍데기(外)만 평가하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이담속찬(耳談續纂)〉에서 전한다. 서과(西瓜)란 수박을 일컫고, 외지(外舐)는 겉핥기다.
다산은 1784년 22세에 과거에 합격하고,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경기도 암행어사·승지 등의 벼슬을 지냈다. 〈이담속찬〉은 다산이 1801년 장기(長鬐)에 귀양 가 있을 때, 사승(師承))인 성호 이익이 우리나라 속담 〈백언해(百諺解)〉를 〈백언시(百諺詩)〉로 지었는데, 이때 다산은 〈이담속찬〉을 기획하였다.
조선 문화의 황금기를 연 정조가 승하하자 천주교회를 배척, 신유사옥(辛酉邪獄)과 황사영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에 연루돼 다산은 강진에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백성들의 힘든 생활을 목격하고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써 치민(治民)의 도리를 폈으며, 학문탐구서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 600여 권을 저술했다. 강진의 유배생활에서 학문적 성과를 총망라한 〈여유당전집(與猶堂全集)〉은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다. 1818년 57세로 유배생활에서 풀려나 1820년 〈이담속찬〉 1권을 저술했다. '서과외지(西瓜外舐)'는 이 속담 214장 중 88장에 있다. 다산은 1836년 75세에 고향인 남양주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순종 4년에 문도(文度) 시호를 받았다.
다산은 처음 천주교학을 접하고 서구의 높은 과학기술이 스펙트럼처럼 비쳐오자 한없는 경외심을 가졌다. 서교(西敎)를 수박 겉핥듯 지나칠 것이 아니라 유교(儒敎)의 바탕위에 융합하는 조해자(潮解者)로 나섰다. 다산은 백성의 물정(物情)을 살피는 〈목민심서〉의 찰물(察物)에서 '왕은 두 눈과 귀만 가지고 듣지 말고(겉), 마음의 눈과 귀를 통해서(속) 들어야 한다. 왕 뿐만 아니라 지방 수령도 그렇다. 예로 항통(缿筩)과 구거(駒鋸)를 들었다. '항통'은 오늘날의 투서와 같은 것이고, '구거'는 함정을 파놓고 질문을 던지는 일종의 유도심문이었다. 물정을 살피는 것도 좋지만 야비한 방법을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백성들의 마음을 세심하고 주의 깊게 살피라는 애민이었다.
옛 말에 봉사가 단청 보는 것이나, 머슴살이 삼년에 주인 성을 묻는다는 말, 또 손톱 밑에 비접 든 것은 알면서 염통 곪는 줄은 모른다는 말은 '수박 겉 핥기'의 전형이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조선은 유교문화에 젖어 쇄국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자(尺) 눈도 모르면서 예복 재단하듯, 지구 반대편의 기독교문화에 '서과외지'했다. 그런데 일본은 서구와 교류를 통하여 신기술을 익혀 격동(擊東)을 준비하고, 조선의 사정을 넘보다가 1910년 침탈을 강행했다.
비가 와야 무지개가 뜨듯 표리(表裏)인 안팎을 알아야 실정을 알 수 있는데 조선은 성리학과 당파에 매몰되어 '수박 겉 핥기'로 일관했다. 오늘의 상황도 '서과외지'하면 남남북녀(南男北女)가 합방하려해도 강대국들의 놀음에 대안이 없다. 다산은 이런 상황을 수박 겉 핥기인 '서과외지'라는 가르침으로 우리에게 깊은 깨우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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