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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세상 읽기] 도시 은자(隱者)

도연명 중국 시인. 매일신문 DB
도연명 중국 시인. 매일신문 DB

대학시절 중국 시문학 수업 때 읽은 시 중 아직도 은은한 여운으로 남아있는 시가 있다. 당(唐)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은자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尋隱者不遇)'이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선생님은 약초를 캐러 가셨다하네/ 이 산 속에 계시기는 하지만/ 구름깊어 어디 계신지 모른다하네'

마음이 헝클어질 때면 이 시를 떠올려 본다. 적막한 산중의 오두막, 맑은 눈의 귀여운 동자는 소나무 아래에서 이제나 저제나 스승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방 안에는 찻물 끓는 소리, 운무 자욱한 골짜기에는 눈썹 하얀 은자(隱者)가 약초를 캐고….

속기(俗氣)라곤 찾을 수 없는 시다. 마른 목에 시원한 샘물 한 표주박 흘려보내는 듯 청량감을 준다. 마음이 고즈넉해진다. 법정스님의 '텅빈 충만'과도 비슷한 느낌….

요즘 부쩍 은자(隱者)의 삶에 관심이 간다. 옛 중국의 숱한 시인들 중 동진(東晉)때의 도연명(陶淵明, 365~427)에 한결 마음이 향하는 것도 은자적 면모 때문이다.

전 생애 내내 가난과 인연이 끊이지 않았던 도연명은 워낙 농사짓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가족들 입에 풀칠하느라 어쩔 수 없이 벼슬아치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10년 남짓 동안 번번이 사직과 낙향을 반복했다. 생활고에 쫓겨 다시 관직에 나가도 이내 사직했다. 아래위 눈치코치 봐야 하는 관료생활이 안 맞았던 탓이다. 마지막 팽택 현령 때도 부임 석달이 안돼 그만두었다. 상부에서 파견 나온 감독관의 오만한 태도 때문이었다. "겨우 쌀 닷말(녹봉) 때문에 하찮은 향리의 소인에게 굽실거릴소냐" 내뱉고는 낙향해 버렸다.

이후 죽을 때까지 20여 년간 갠 날에는 밭을 갈고 비 오는 날엔 글을 읽는 '청경우독(晴耕雨讀)'의 삶을 살았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 꺾어 들어 멀리 남산을 바라보고, 해질녘 더욱 아름다워지는 산(山) 기운에 감탄하는 유유자적을 누렸다. 그 시절 일상에서 길어올린 '귀거래사'나 '음주' 같은 시들은 '도연명' 이름 석자를 중국문학사에 깊이 아로새겼다.

중국 역사에는 각양의 은자들이 많다. 죽림에 모여 거문고 뜯고 술 마시고 청담(淸談)을 논하면서, 속세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삶을 지향했던 죽림칠현(竹林七賢)도 그러했다.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동진시대 왕희지도 관직을 접고 은자의 길을 택한 사람이다. 부유한 귀족 출신이었지만 관료생활에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던 왕희지는 자원하여 회계군으로 내려가 저 유명한 '난정집서'를 썼고, 얼마 후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산수 아름다운 회계에 묻혀 살면서 거위의 목 움직임을 보며 서법을 연구하고, 약초도 캐며 충일한 여생을 보냈다.

소동파와 함께 북송의 4대 서가(書家)로 꼽히는 미불(米芾)은 다재다능한 기인이기도 했다. 출세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던 그는 사사건건 상관과 충돌하고 좌천당하면서도 가족생계를 위해 40년 긴 세월을 관리로 지냈으니 이른바 '관은(官隱: 관료계 은자)'인 셈이다.

명말(明末)의 여행가이자 탐험가, 지리학자인 서하객(徐霞客)은 30여 년간 수많은 심산유곡을 탐험하느라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그 고독하고 험난한 여정의 기록물이 바로 '서하객유기(徐霞客遊記)'이다. 말하자면 '이동하는 은자'였다. 역시 명나라 때 소주의 유명 문인 4명을 일컫는 '오중(吳中)의 사재(四才)'의 스승격인 고명한 화가 심주(沈周)는 명 태조 주원장의 배척으로 집안이 크게 기운 탓에 83년 생애 동안 벼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시은(市隱: 도시의 은자)' 으로 일관했다. 심주의 영향으로 당시 소주에는 권력과 관료사회에 등 돌리는 '시은' 전통이 생겨나기도 했다.

깊은 산중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 TV 다큐물을 한때 즐겨보았다. 불현듯 산다는게 간단치 않은 무게로 다가오고, 인간관계가 덧없이 여겨질 때면 세상에서 한발짝 떨어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자연인(自然人) 다큐물이 인기를 얻는 것도 대리만족 때문이다.

전경옥 언론인
전경옥 언론인

한데, 요즘 왜 이리도 세상은 더 소란스러울까. 정의니 공정이니 하는 단어들이 이토록 일상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던가 싶다. 들끓는 세상에 염증을 느끼게도 된다. 깊은 산으로 들어갈 용기일랑 아예 없으니 도시 은자의 생활방식이라도 추구해야 하나. 하기야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 공포로 우리 모두 약간은 도시 은자 비슷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참이다. 그런데 만약 앞으로 몇 년이고 코로나 공포가 걷히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기상천외한 21세기형 은자들이 마구 생겨날 지도 모를 일이다.

전경옥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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