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나랏돈이 네 돈이냐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020년도 제4회 추가경정예산안 제출 자료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도착, 의원실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020년도 제4회 추가경정예산안 제출 자료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도착, 의원실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정부의 재정건전성 지표가 역대 최악이다. 들어오는 돈에 아랑곳없이 쓰는 일에 몰두하다보니 벌어진 일이다. 1~7월까지 정부 총수입은 280조4천억원에 불과한데 총지출은 356조원이다. 국세 수입이 지난해 보다 무려 20조8천억원이나 줄었다. 그래도 지출은 37조8천억원을 늘렸다. 경기를 살린다며 예산을 마구잡이로 끌어다 썼지만 경기 반등 기미는 없다. 세수 감소는 정책 실패의 방증이다.

정책엔 실패해도 정부·여당은 돈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코로나를 이유로 이미 세 차례 추경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올해 늘어난 나랏빚이 100조원을 훌쩍 넘었다. 국민이 짊어질 빚이 1인당 200만원이상 증가했다.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씩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받고선 그 8배에 달하는 나랏빚을 덤터기 쓴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돈 씀씀이는 거침이 없다. 3차 추경 사업 중 상당수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는데 4차 추경을 서두르고 있다. "곳간에 쌓아두면 썩는다"던 곳간은 텅 비었다. 전액 빚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비상경제회의'서 '신속'이란 단어를 다섯 번이나 사용했다. 추석이전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많은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국민의 필요에 부합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선별지급이 말썽이다. 이미 공돈에 맛들인 국민들은 누군 주고 누군 안주냐고 아우성이다. 그러자 전국민에게 1인당 2만원씩 통신비를 준다는 무마책이 또 나왔다.

나아가 여당 씽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원장인 홍익표 의원은 "내년 상반기엔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벌써부터 운을 뗐다. 내년 초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열린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이미 지난 총선서 재미를 쏠쏠하게 본 정부다.

그 사이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5%까지 치솟았다. 박근혜정부 시절 '국채비율 40%가 마지노선'이라더니 이 정부 들어 '그 근거가 뭐냐'로 바뀌었다. OECD평균보다 크게 낮아 국가 재정이 매우 건전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는 매우 안이한 시각이다. 원화는 달러나 유로, 엔화처럼 기축통화가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국가들은 국채비율이 높다고 외환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는 국채비율이 급등하면 국가신용등급이 흔들리고, 국채 금리가 오르고, 원화가치가 떨어진다. 자칫 IMF사태 같은 외환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

나랏빚 폭증이 정부 설명대로 코로나 탓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하다. 문 정부는 출범이후 줄곧 적자재정에 기반한 초슈퍼 예산 정책을 펴왔다. 2018년 7.1%, 2019년 9.5%, 2020년 9.2%씩 예산 규모를 더 늘렸다. 내년에도 본예산만 8.5% 증액한 예산안을 내놓았다. 임기 내내 예산 증가율이 매년 경제 성장률을 3배이상 초과하고 있다. 역대 정부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코로나 탓' 추경도 빈말에 가깝다. 문 정부는 집권 후 한 해도 추경을 편성하지 않은 적이 없다. 2017년 집권 첫해엔 일자리추경을, 2018년엔 청년일자리 추경을 했다. 2019년엔 미세먼지와 경기대응 추경을 또 했다. 올해는 코로나를 이유로 추경규모와 횟수를 역대 최고, 최다로 늘렸을 뿐이다.

정부가 초슈퍼 예산을 짰다고 '내 삶이 나아지는 나라'가 되었나. 부정적이다. 국민들은 언제 터질지 모를 빚만 잔뜩 짊어졌을 뿐 삶은 더 팍팍해졌다. 집 있는 사람들은 치솟는 세금을 걱정하고, 집 없는 사람들은 집값을 걱정한다. 도산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들은 정부 구제에 목을 매야한다. 지난달 구직급여액은 4개월 연속 1조원을 넘겼다.

재정중독에 빠진 정부가 돈 풀기로 당장의 인기는 유지할 수 있다. 과거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아르헨티나의 페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이 그렇게 정권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라들은 예외없이 경제 위기를 맞았다.

세계적 경영학자 피터드러커는 그의 저서 '미래경영'에서 기업 경영의 '효과성'과 '효율성'이란 마인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효과성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효율성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한낱 기업도 이 두 가지에 실패하면 도태되기 쉽다. 하물며 나랏돈으로 살림을 꾸리는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해선 안 될 일을 구별하지 못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지금 포퓰리즘 소리가 나오는 정부의 돈 씀씀이에서 효과성과 효율성이 의심받는다. '국민이 원하면 다 줘라'는 정치로 두 차례 11년을 집권한 파판드레우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나랏돈이 네 돈이냐'는 말을 천둥처럼 들어야 할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