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일상중국] 무간도의 세상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평양대성산관
평양대성산관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다나카(가명)는 대사관 직원이었다. 주한일본대사관 3등 참사관이라는 명함을 건넸다. 어느 행사장에서 만난 후 식사 한번 하자는 연락이 와서 한두 차례 밥을 먹은 후 종종 청와대 등의 가벼운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한 관계자들의 반응을 물어왔다.

나는 별 생각없이 아는 대로 알려줬다. 국회에서 활동하는 대기업의 대관업무 관계자들의 통상적인 정보 수집 활동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보통의 일본 사람처럼 예의 바르게 밥을 먹자고 했고 우리에게는 그다지 비밀스럽지 않은 일들에 대한 자문을 종종 구했다. 그가 소위 대사관에 파견된 일본 내각정보부의 '화이트 요원'인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정부 국무원 산하의 '중국 사회과학원'으로 연수를 갔을 때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공통으로 수강하는 교양과목 강의에서 만난 스즈키(가명)도 기억난다. 어쩌다 함께 학교 옆 만두가게에 여럿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중국 만두'를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그에게 '국수 예찬론'으로 응수하면서 가까워졌다.

대만과 미국 대학을 거쳐 중국에 온 그의 학력과 그를 중국에 보낸 회사의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세상사보다는 그와의 '먹방'이 더 편했다. 한동안 연락하던 수상한 그들과는 슬그머니 그렇게 소식이 끊겼다.

중국에는 북한이 직접 투자해서 운영하는 음식점과 카페(술집)가 꽤 있다. '외화벌이'가 중국 진출의 첫 번째 목적이지만 상당수 종업원은 '공작원'이다. 북한 식당들도 코로나19 여파를 피해가지 못한다. 베이징의 '옥류관'은 대북 제재로 닫힌 문을 지난 연말 열었는데 코로나로 5월에 다시 문을 닫았다.

2004년 개업한 평양 카페 '대성산관'은 아예 폐업했다. 이 카페는 교민과 조선족들이 주로 찾으면서 북한 공작원들의 '소굴'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안쪽 별도의 룸에서 북한 종업원들이 기타로 직접 연주를 해주는 방식으로 노래도 할 수 있어서 중국을 방문하는 우리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공작'이 가능한 '위험한'(?) 카페였다. 코로나가 베이징의 북한 공작 무대를 닫게 한 셈이다.

영화
영화 "무간도"포스터

공자학원(孔子學院)도 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온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세계 150여 국가에 548곳의 공자학원과 1천187곳의 공자학당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베이징의 어언대학이 주관하던 한어수평고시(HSK)도 이 기관이 가져갔다.

공자학원을 거점으로 한 스파이 의혹이 제기되면서 미국과 스웨덴 독일 캐나다 등에서 공자학원 퇴출이 이뤄지고 있다. 2018년 미국 FBI 국장의 공자학원은 중국공산당의 사상 선전과 스파이 활동에 이용되고 있으며 미국 내 중국인의 동향을 감시하는 거점으로도 악용되고 있다는 청문회 증언을 계기로 공자학원의 다양한 스파이 활동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공자학원 최다 보유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스파이 행위'에 대한 경각심이 아예 없다. 오히려 각 대학 측은 중국과의 교류 확대 및 중국 정부의 각종 인센티브 유혹 등을 이유로 공자학원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다.

우리 정보수사기관이 적발한 공자학원을 위시한 중국 관련 스파이 활동은 전무하다. 스파이 활동이 과거처럼 군사첩보나 국가 기밀을 빼내는 것일 뿐 아니라, 주요 인사 동향과 고급 기술 및 산업 정보 취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한국 공자학원에 파견된 교수 한 분을 소개받아 '중국어 공부 모임'의 강사로 초청해서 같이 공부한 적이 있다. 장 교수(가명)는 신중했고 예의가 발랐다.

한 학기 동안 수업을 진행하고 가끔 식사도 하면서 교류했지만 그가 중국 정부를 위해 어떤 다른 활동을 했는지는 모른다. 귀국한 뒤에도 우리는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한국의 공자학원이 중국어 교육과 중국 문화 강좌 등 알려진 활동 외에 중국 유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스파이 활동으로 의심받는 다른 활동을 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중국국가정보법'과 '중국사이버보안법' 등은 중국 국적의 '전 인민의 스파이화'를 가능하게 할 정도로 막강하다.

영화 '무간도'(無間道·2002)는 경찰에 침투한 홍콩 삼합회 조직원과 삼합회에 침투한 경찰이 각각 '스파이'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무간지옥' 같은 일상(日常)을 풀어낸 영화다. 한·중·일 동북아 3국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영화보다 더 지옥 같은 무간도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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