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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인성에 문제 있어? -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한때 공무원시절,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회의에 참가 한 적이 있다. 공식 일정 중 프랑스에서 유명한 공립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그들의 토론 수업시간을 참관할 기회를 가졌다. 마침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들도 있었다. 토론의 주제는 '공적책임'이다. 프랑스 학생은 국가세금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받은 교육은 어떤 형태든 사회로 환원해야 하고, 자기들의 우수한 재능은 사회적 연대로 만들어진 '통합적 지식'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랑스의 지적전통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방문한 한국대표단을 배려하여 한국 교환학생들에게도 발언 기회를 주었다. 우리 학생들은 자신있게 발언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황당했다. "한국 교육은 똑똑한 인재를 키우지 않는 편향된 교육시스템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대접받는 교육풍토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프랑스 학생은 지식의 공유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반면, 우리 학생들은 지식의 우월성만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요즘 '가짜사나이'로 유명한 UDT 출신 이근 대위의 유행어로 다시 표현하면, '인성에 문제 있는, 개인주의로 뭉친 엘리트주의자'를 보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준 약간의 격려금이 수많은 한국의 시민들이 피와 땀으로 낸 세금이라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설령 알았더라도, 당연히 받아야 할 전교 1등의 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최근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의사들은 파업을 하였고, 의대생들은 국가시험을 거부했다. 그들은 당당하게 "매년 전교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를 선택해야 국민의 생사를 책임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공감능력이 일도 없는 엘리트주의의 오만한 메시지다. 의사들이 똑똑한 것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소통의 방식이다. 의사들이 싸우려는 이유는 병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더 나은 진료를 하기 위함이다. 먼저 환자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국민들은 코로나때 의사들이 보여준 헌신과 봉사를 기억하고 있다. 소통은 논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존중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싸움은 백전백패다. 환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충만한 명의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일상의 카톡방에서 대화할 때, '급여체(회사에서 급여를 받는 직장인들이 쓰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특히 대화 내용 중 '넵'으로 시작해 '넵'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왜 '네'라고 하지 않고 '넵'이라고 응답하는 것일까? 단어 하나, 문장부호 하나로 뜻이 달라져 갈등을 유발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공감의 표시다.

인성에 문제없는 소통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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