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자신이 봉직하고 있던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회 정문에 면죄부 판매에 혈안이 되어 있던 로마 교황청을 비판하는 95개 조목의 '면제부의 효력에 관한 반박문'을 써 붙였다. 면죄부 장사뿐만 아니라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도덕적 일탈 등으로 막장까지 간 당시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였다. 중세 천년의 강고한 질서에 균열을 일으킨 종교개혁의 출발점이다.
루터를 비롯하여 당시 종교개혁가들이 부패한 교회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부르짖은 구호는 세 가지이다. '오직 성서'(sola scriptura)와 '오직 은혜'(sola gratia)와 '오직 믿음'(sola fide)! 이 가운데 중심은 당연히 '오직 성서'였다. '은혜'도 '믿음'도 성서 속에 있는 말씀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루터는 이것이 한갓 '구호'에 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라틴어 일색이던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서'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수 지식층의 언어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읽고 쓰는 대중적 언어로 옮겨진 성서를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루터가 95개 조목의 반박문을 통해 종교개혁의 불을 댕긴 지 정확히 326년 뒤, 독일의 이웃나라 덴마크에 살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Enten-Eller)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삶을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했다. 첫째는 감각적 욕망에 빠져 물질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단계이다. 그런데 이런 삶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일시적이고 표피적일 뿐, 그 쾌락이 지나가면 더 깊은 허무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익히 검증된 바이다.
이 때문에 이 단계의 삶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도약한다. 양심과 이성을 안내자로 보편적 규범을 준수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윤리적 삶의 단계이다. 앞의 단계가 개인적 안일만 추구하는 차원이라면, 이 단계는 사회 성원의 일원으로 타인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살아가는 단계이다. 하지만 이 단계도 곧 좌초하고 만다. 설령 윤리적으로 살아가더라도 원죄를 지닌 피조물로서 언제나 죄를 지을 가능성 속에 노출되어 있는 존재가 인간의 실존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또 한 번의 도약이 감행된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 자신을 던지는 종교적 단계이다. 신에게 백기 투항함으로써 진리에 눈 뜨는 단계이다. 이런 결단을 키르케고르는 '신 앞에서 선 단독자'라는 말로 그 고독감의 깊이를 표현했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이 세 단계는 어설프게 절충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이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단계로의 도약은 오직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결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책 제목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인 이유이다. 비종교인으로서 외람된 발언이기는 하지만, 신앙의 본질은 이처럼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아무런 매개 없이 성서 속으로, 그리하여 절대자의 말씀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부 교회의 일탈로 기독교가 세상을 부패하지 않게 하는 소금이 아니라 국민들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소금으로 지탄받고 있다. 하지만 십자가와 같은 뉴스도 없지 않다. 목수로 생업을 꾸려가는 4명의 목사가 봉직하는 경기도의 한 교회가 어디서 예배하느냐보다 어떻게 예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코로나 방역 협조를 위해 교회를 철거한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여기다가 그동안 모금된 헌금과 교회가 입주한 건물의 월세 보증금을 합쳐 신자들에게 매달 10만원에서 30만원까지, 그것도 길게는 열 달 동안 코로나 위로금을 나누어 주기로 했다니, 그야말로 이 엄혹한 세상에 '소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은 든다. 교회 예배는 신앙의 바로미터라며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일부 목회자들의 주장이 맞다면 그 목수 목사님들은 지옥에 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여,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서도 염치없이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 그렇게 안 하실 거죠?"
박원재 율곡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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