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없는 상처만 남은 전투가 끝났다. 3주 가까이 파업에 나섰던 전공의들이 진료 현장에 복귀하였다. 대학병원의 핵심 인력들이,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필수 의료 인력마저 업무를 중단했기에 파장은 컸다. 하루하루 협상이 타결되었느니, 지도부 간에 의견 대립으로 협상이 결렬되었느니, 파업이 연장되었느니 하는 뉴스가 실시간마다 쏟아지면서 정부와 의사 집단 간의 힘겨루기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았지만 일단은 휴전 상태로 들어갔다.
의사 파업 사태는 전공의들이 복귀하기로 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아직 국가시험 미응시 의대생 해결 문제, 공공의료 확대 방안을 둘러싼 쟁점들은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여전히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 정원 확대를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결정하였기에 파업을 중단하고 현장에 복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언제든 뜨거운 감자가 될 사안이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 집단 간의 대립 속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지방의 의료 시스템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니 정부도 뒷짐 지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뭐라도 해야 하는 여당과 관료의 조급함 때문이었을까? 다소 뜬금없는 정부의 정책 발표에 대해 왜 하필 이 시점에 이런 방식으로 발표하고 밀어붙여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처방에 조금 더 무게를 두어야 하는 시점인데 장기적 관점에서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정책을 갑자기 꺼낸 정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전에 볼 수 없었던 개업의사, 전임의, 전공의, 의대생의 연합 전선을 형성시키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정부도 강경한 입장을 이어가다 결국 원점에서 재합의하기로 하였다.
정부의 의도와 의사 집단의 대응이 어떠했던 간에 이번 파업 사태에서 정작 정부와 의사 집단이 대립의 명분으로 강조했던 공공성(公共性)의 중요한 가치가 상실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공공의료 확대라는 공공성 명분을, 의사 집단은 의료 서비스의 질 하락과 국민의 피해라는 공공성 명분을 가지고 서로 대치하였다.
응급실을 찾지 못해 몇 시간을 길거리에서 헤매던 응급환자가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의료 공백으로 인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훼손되고 침해되었다. 파업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의사 집단 내부의 이해관계에 따른 의견 대립과 국민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는 소통 방식은 결국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의심을 남겼다.
하나의 사회문제가 정책으로 집행되기까지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사회문제가 발생하면, 여론에 의해 사회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공중의제), 정부가 공중의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식의제로 설정하게 된다(정책의제). 공중의제가 정책의제가 되었다고 해서 바로 정책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정책의제 중에서도 의제의 중요성, 긴급성, 파급성을 고려하여 일부 정책의제만이 정책으로 형성된다. 정책을 형성하는 과정에는 세밀한 정책 내용 마련과 정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의료 확대라는 중요한 정책의제를 제기하고도 정부의 정책 능력에 대한 의문만 남겼다.
정부의 공공의료 확대를 위한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해도 정책 발표 시기와 미흡한 정책 내용, 그리고 이를 빌미로 한 의사 집단의 집단행동 명분과 주장은 국민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 집단 모두 국민과 소통하지 못했다. 이번 사태는 상처뿐인 영광도 아니고, 서로 상처만 남은 소모전이었다.
2017년 기준 한국의 인구 1천 명당 임상의사 수는 2.3명으로 OECD 주요국 3.4명에 비해 적다. 2019년 기준 서울의 인구 1천 명당 임상의사 수는 3.1명이지만 경북은 1.4명이다. 서울 종로구는 16.27명인데, 경북 봉화군은 0.79명밖에 되지 않는다. 지방 사람들이 덜 아프고 더 건강한 결과라면 모를까 수치상으로 나타난 의료 서비스 불균형은 심각하다. 공공성의 가치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점에서 생각하면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될 '공공의료 확대' 정책의 합의점은 간단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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