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예술의 쓸모/ 강은진 지음/ 다산초당 펴냄

고흐는 일생 동안 800여 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생전에 팔린 그림은 단 1점뿐이다. 그만큼 당대엔 무명이었다. 그런 그가 사후에 최고의 예술가가 된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그의 천재성이 아니라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한나의 탁월한 '캐릭터 마케팅' 덕분이다. 요한나가 고흐의 편지들을 정리해 엮은 책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화가의 예술철학과 내밀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을 통해 무명화가 고흐는 '비운의 천재 화가'라는 캐릭터로 대중에게 각인되며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흔히들 "예술, 그거 일상생활엔 별로 쓸모가 없잖아요"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예술경영 전문가인 지은이는 "예술이야말로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인 통찰로 가득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예술가는 고독하고 광기어린 천재가 아니라 시대를 읽고 기회를 창조해내는 탁월한 기획자이자 전략가라는 점이다.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혼란의 시기를 파도 타는 서퍼처럼 능숙하게 살아낸 다비드, 쇠락한 공업도시를 순식간에 최고의 관광도시로 만든 건축가 게리, 과감한 결단과 기획력으로 현대 예술을 만들어낸 후원자 페기 구겐하임 등 예술의 무대를 화려하게 빛낸 이들의 이야기는 재미와 감동을 주고 있다.

페르메이르를 스타화가로 만든 정체불명의 진주 귀걸이 소녀 그림에서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세상의 비판을 무릅쓰고 끝내 대세가 된 인상파에서는 네트워킹과 연대의 중요성을, 드가와 바토를 통해서는 개인적인 욕망과 고민으로부터 세상을 바꾼 혁신을 엿볼 수 있다.

니체도 이런 까닭에 "예술은 삶의 위대한 자극제"라고 했는가 보다. 얼어붙은 삶의 감각을 깨워 좀 더 넓고 새로운 시야를 갖도록 도와주는 게 예술이라는 뜻일게다.

책은 모두 40인의 예술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더욱 단단하고 창조적으로 만드는 통찰력을 키울 수 있게 돕고 있다. 336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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