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은 대구의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앞산의 옛 이름은 성불산이었다. 지금의 중앙공원으로 바뀐 경상감영의 맞은편에 있다하여 안산(관기안산)으로 불리다가 앞산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혹은 남쪽을 '앞'이라 하여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앞산으로 불려졌다는 설도 있다. 앞산에는 예로부터 고려 태조 왕건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오는 천년 고찰(古刹)이 세 곳 있다. 앞산에는 골짜기가 많기로 유명한데 큰골, 고산골, 안지랑골 등 비교적 크고 이름난 골짜기가 있는가하면 용두골, 메자골, 달비골 등 작고 아담한 골짜기도 많다. 이 중 세 고찰은 큰골에 자리한 은적사, 안지랑골에 위치한 안일사와 달비골에 위치한 임휴사다.
팔공산 파군재(군사가 파했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에서 견훤에게 크게 패한 왕건은 동쪽으로 도망을 가다가 다시 대구 앞산 큰골로 와서 삼 일 동안 굴 속에서 숨어 지내게 된다. 이 굴이 왕굴이며 왕굴에서 살아남은 왕건은 신라 영조대사에게 사찰을 짓도록 명한다. 태조 왕건이 숨어 있었다고 해서 숨을 은(隱), 자취 적(跡)를 사용해서 은적사다.
또 다른 사찰은 은적사에서 몸을 숨기고 이곳에 와서야 편안히 숨어 있었다고 해서 편할 안(安), 숨을 일(逸)을 붙여 지명이 유래된 안일사다. 원래 신라 경순왕대에 창건한 사찰로 이미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오고 있었다. 이 사찰은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 운동가들이 비밀리에 국권회복운동을 펼쳐나간 뜻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1915년 1월 15일 이시영·윤상태·서상일 등 13인이 이 절에 모여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조직한 바 있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역사적 성지다.
임휴사는 왕건이 임시 휴식을 취했다고 해서 임할 임(臨), 쉴 휴(休)를 사용해서 지명이 유래된 사찰이다. 견훤에게 연이은 패배로 심신이 지쳐있을 무렵 이 절에서 부처님 전에 불공을 드리며 심기일전하여 다시 전장에서 승리의 기틀을 마련한 유서 깊은 호국도량이다. 다른 사찰처럼 이렇다 할 문화재는 없으나 절 위쪽 굴속에 석샘이라는 약수터가 있으며, 위장병에 특효가 있는 약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곳에는 석두암이라는 암자가 있었고 당시 이 샘의 천장에서는 쌀이 떨어졌는데 행자가 욕심을 부려 부지깽이로 쑤신 뒤 물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 약수는 수십 년 전 위장병으로 고생하던 동네 노인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이처럼 앞산은 후백제의 견훤과 접전을 벌일 무렵 수세에 몰린 왕건이 은적사, 안일사, 임휴사 등지에서 머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는 훗날 고려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 곳이다.
또 푸른 숲과 맑은 공기, 각종 위락시설이 어우러져 있어 대구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전국에서 등산객이 두 번째로 많은 산이기도 하다. 골짜기마다 맑은 물을 보내어 젖줄 같은 신천을 만들었다. 부모님에게 안부 전화 한 통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듯이 앞산을 찾아서 산행이라도 해보자. 주위의 숲을 둘러보며 천천히 걷다 보면 왜 앞산이 어머니의 산이요, 산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은혜와 그 산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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